노인과 말, 40년 동업과 마지막 운명의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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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도자 (124.♡.171.105) 작성일14-03-09 18:53 조회7,968회 댓글4건본문
노인과 말, 40년 동업과 마지막 운명의 3년
구도자 13-09-08 23:27 조회694회
** 오늘 참도님이 장가못산 노총각 해원도수에 대한 성구를 올리셨길래 작년에 제가 참신앙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사이트 옮겨오면서 함께 옮겨 오지 못한거 같습니다.
[들어가는 말]
천지공사는 역사가 전개되는 시간표며 이정표다. 지상에 역사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신명도 움직이고 인간도 움직인다. 주도권은 천상의 신명이 쥐고 있다. 그러나 신명은 무형이고 인간은 유형이다. 역사의 작품은 천상이 아니라, 지상 인간계에 만들어지는데 묘미가 있다. 이를 인신합덕(人神合德) 혹은 신인합발(神人合發)이라고 한다.
상제님과 수부님의 천지공사 기록은, 후세에 붓대 쥔 자에 의한 조작이 아니라면, 반드시 역사의 사건이 된다. 천지공사를 투철하게 알면 현재를 알고, 미래도 알 수 있다. 물론 아무 때나 아는 건 아니다. 그때에 임박하여 하늘이 열어주는 한계 내에서만 알 수 있다. 당국하면 아느니라(대순전경)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홍성렬 교수부부 피살사건에 대한 보도가 한겨례 신문에 의해 다시 점화되었다. 사건발생은 2001년 10월 25일이고, 범인검거 발표는 9년 뒤인 2010년 4월이었다. 범인 검거는 인간의 노력이었으나, 실은 하늘의 뜻이었다. 이제 한도(도수)가 차서 사필귀정, 누구의 소행이었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시간대를 맞이한 것이다.
당시 충남도경 언론발표 때에 이미 범인의 소속 교단과, 궁극의 배후에 대한 보도 이외의 것들이 퍼져나갔다. 알 만한 사람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취재기자들도 해당경찰도 짐작했으며, 교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3년이 지난 2013년 사오미 개명의 첫해, 계사년. 드디어 언론계는 이 사건을 재 점화했다. 다 하늘의 뜻일 것이다.
[동업과 살인에 얽힌 노인과 말 이야기]
도전 9편 96~97장의 상제님 말씀은 어느 경전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김호연 성도(1897~1992)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옛날이야기처럼 구수하다. 도대체 무슨 공사인지 감이 안 잡힌다. 처음 읽어서는 무슨 도수인지, 상제님의 숨은 뜻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여러 번 읽으면서 깊이 궁구해보니, 여기에는 상제님의 위대한 천지공사가 숨어있음을 깨닫는다. 물론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남의 집 머슴 사는 어떤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이가 40살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간 채 허연 머리를 길게 땋고 다녔다. 여기서 키포인트는 머슴살이이다. 그리고 40년이란 시한을 말씀하신다. 머슴살이는 주인신앙, 진주신앙이 아닌 머슴신앙, 노예신앙을 뜻한다. 40년이란 그 머슴신앙이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라 어떤 시한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공사등장 인물 이름에 집착하지 말라.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름 좋다고 주인공이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원일(辛元一) 이라는 이름을 보라. 얼마나 좋은가? 그렇다고 그가 천지공사의 주인공인가? 아니다. 안내성(安乃成)이라는 이름을 보라. 얼마나 좋은가? 마치 모든 것을 다 이룰 것 같은 이름이다. 그렇다고 그가 천지공사의 주인공인가? 결코 아니다. 상제님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 함정에 쉽게 빠져서 그것으로만 사물을 보면, 자칫 영원히 난법의 구렁텅이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상제님은 병권에게 물으신다. 어째서 장가를 못 갔느냐? 병권이 대답한다. 제가 죄를 많이 지었는지 부모덕을 못 입어 조실부모하고 남의 집에 살면서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다 늙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머슴신앙, 개벽신앙 하느라고 제 인생 못살고, 남의 집 머슴살이 죽도록 했던 동료 도반들이 생각난다. 그나마 40넘어 늦게나마 시집가고 장가간 사람들은 다행이었다. 그도 저도 못하고 그냥 50살로 넘어간 노총각 노처녀도 적지 않다.
답답하신 상제님은 병권의 뺨을 때리신다. 얼마나 못났으면 난법신앙에 빠져 인생을 그르치느냐 하시고 경책하시는 뺨때림이었을 것이다. 장가 꼭 가고 조상 선영제사 꼭 모셔야 함을 강조하신다. 이 말씀과 행위 속에는 네가 지금까지 한 신앙은 참신앙이 아닌 난법신앙이었음을 암시하고 계신다.
드디어 상제님은 시집 장가도 못가고 노예신앙, 머슴신앙해온 불쌍한 일꾼에게 새로운 길을 틔워주시기로 작정하신다. 너 내 말 들을 테냐? 그러면 너 한번 좋은 꼴 볼 것이다. 늦복이나 터지게 가르쳐 줄거나? 내가 너 장가가게 해 주랴? 어떻게 하는가 가르쳐 줘? 네 인생이 불쌍해 내가 살게끔 해 주마.
이 세상은 상제님의 천지공사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상제님의 기운을 받지 않으면 크고 작은 일,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대두목을 찾아 신앙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상제님 수부님 참말씀을 찾아 상제님과 수부님을 바르게 신앙하려고 해야 한다. 내가 살게끔 해주마~~ 너무도 자애로우신 상제님의 축복 말씀이다.
상제님은 병권에게 저 깊은 산(山)중으로 가라고 하신다. 바다가 아니고 강도 아니고 평야도 아니다. 깊은 산(山)을 말씀하신다. 어느 산이라고는 특별히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곳은 아마도 구름[雲]이 얽혀있는 깊고 깊은 산[山]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산은 보통 산이 아니었다. 한번 잘못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험악한 산이었던 것이다.
* 저 깊은 산중에 칡이 이리 넝쿨지고 저리 넝쿨지고 서로 어우러져서 더 이상 뚫고 나갈 수 없는 곳이 나오거든, 그곳에서 하루가 저물도록 앉아 있거라. 밤이 되어 앉아 있는 땅이 들썩들썩하거든 옆으로 옮겨 앉아라. 그러면 거기서 사람이 나올 것이니 그 사람을 바짝 따라가면 장가도 가고 네 분도 풀게 될 것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설악산에 놀러갔다가, 그만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산에서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도무지 민가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같이 간 또 한명의 동료와 결국 쌀도 버리고, 짐도 버리고, 무거운 것은 다 버렸다. 밤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졌고, 체력은 소진되었다. 무엇보다 갈증이 났다. 밤 12시쯤 되었을까?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엉금 엉금 기어가 간신히 물을 마셨다. 그리고 옆으로 벌러덩 누웠는데,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곳에 해골 2구가 서로 엉켜 누워있었던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산속에서 실종된 남녀 두명의 해골이었다고 한다. 그들 남녀도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해 결국 서로 껴안고 죽은 것이리라. 깊은 산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특히 구름이 깊은 산을 조심하라. 목숨마저 빼앗길수 있는 것이다. 옛 시에도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란 말을 있음을 알라!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하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라.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이나,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라.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스승님(상제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습니다.
다만 이 산속에 계시기는 하나
구름이 깊어 어느 곳에 계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 779~843의 시)
상제님 말씀 중에 더 이상 뚫고 나갈 수 없는 곳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더 이상 신앙할 수 없는 어떤 한계상황을 말씀하는 것이리라. 일꾼을 소모품 취급하고, 개벽신앙으로 있는 돈 다 털리고, 청춘도 날아가 버리고, 노예신앙, 머슴신앙 끝에 한계상황에 다다른 신앙을 말씀하는 것이리라.
밤이 되어 앉아 있는 땅에서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을 바짝 따라가라. 장가도 가고 네 분도 풀게 될 것이다. 이 말씀 속에서 일꾼의 한이 풀리는 어떤 모종의 사건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무엇일까? 더 이상 노예신앙, 머슴신앙이 아닌 주인신앙, 진주 신앙을 하는 위대한 계기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병권은 더 이상 선택의 카드가 없었다. 이미 흘러간 인생, 구리골 강증산 어른의 말씀을 믿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무엇할꼬. 하라시는 대로 한번 해보자!! 하고 결심하며 가르쳐 주신 곳을 찾아간다. 드디어 약속된 시간이 되자 엉덩이가 들썩이더니 사람이 땅속에서 나온다. 젊은 사람이 아닌 노인이었다. 그런데 또 나오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말이었다. 소도 개도 돼지도 아닌 말이었던 것이다!! 노인과 말!
무엇이 떠오르는가? 안필성과 말을 탄 초립동이가 생각나지 않는가? 우연의 일치인가? 상제님의 의도된 연출이신가? 나는 천지공사라고 본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상제님의 기록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지고 마는 절대 필연의 천지공사이지 않는가? 노인 나오는 곳에 당연히 말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래야 이야기는 구성된다.
노인은 말을 타고 한참을 가다가 어느 부잣집으로 들어간다. 말을 탄 노인을 상상해 보라. 걸어서 가는 노인이 아니다. 말과 노인은 일체다. 얘기가 재밋으려면 소를 탄 노인도 상상해 봄직도 하지만 상제님은 말을 탄 노인을 말씀하셧다. 드디어 노인은 부자집으로 들어간다. 알고 보니 노인은 그 부자집의 주인이셨다. 가난한 집이 아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개인통장에 수십억을 넣고 사시는 부자집 노인이셨다. 그리고 그날은 노인이 집을 떠나서 죽은지 3년이 되는 제삿날이었다.
상제님 말씀 이야기는 97장으로 오면서 약간 다른 설정으로 들어간다. 노인은 연전에 친구와 동업으로 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말은 외양간으로 사라지고 이번에는 노인과 친구, 이렇게 두사람으로 설정이 바뀐다. 노인과 친구는 내 것 네 것이 없이 지내던 친구였다고 한다. 내 것 네 것이 없으려면, 아주 특별한 사이라야 한다. 갑자기 1편 25장에서 친구 같은 부자父子지간 이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동업 장사라~~ 무슨 장사였을까? 천지공사 뿌리장사였을까? 종교장사였을까? 내 것 네 것이 없이 친구처럼 지내며 어떤 장사를 했다는 것인데, 상제님 진리는 교운 즉 종교이니까 당연히 종교장사가 맞을성 싶다. 여기서 노인의 친구는 다름아닌 말[馬]이며 동시에 아들이 된다고 해석해 본다. 아버지 것은 당연히 아들 것이 되고 만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내 것 네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욕심 많은 친구는 노인을 죽여 버리고 깊은 산 칡 덩굴진 곳에 말과 함께 묻은 뒤에 돈을 챙겨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노인의 집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노인이 집을 떠난 날을 기일(忌日)로 삼아 제사를 지내 오더니 이 날이 바로 그 노인의 제삿날이었다고 하였다.
욕심 많은,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친구였다고 했다. 얼마나 욕심이 많았으면 내 것 네 것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 다 차지하려고 노인친구 마저 죽였을까 생각해 본다. 욕심이 모든 것의 원인이었다. 다정하게 갈라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혼자서 다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었으리라. 세상만사는 분수를 알아야 한다. 내가 노인의 친구였다면 반반이 아니라 3대 7이라도 오감해 하며 열심히 도왔을 것이다. 한번 왔다 가는 인생 뭘 그리 오래 살고 영화를 누린다고 친구마저 죽여야 하는가?
친구는 노인만 죽여서 묻은 것이 아니라 말도 함께 묻었다. 이것은 말이 더 이상 말 노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말은 주인을 태워서 돌아다녀야,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인데, 이제 말도 죽었으므로, 더 이상 말은 말 노릇을 하지 않는다는 암시가 있다. 한편 노인과 말을 같이 묻은 것은, 둘은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노인이 죽으면 혼자 남은 말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다. 공동 운명체라는 것이다.
제사상에 술잔을 올릴 때, 친구가 술을 올리니 갑자기 잔이 툭 떨어지며 술이 엎질러지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병권은 이것을 보고, 친구가 노인을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제사상에 올리는 술이 엎질러지는 것은, 다른 누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신명계에서 일을 꾸며서 범인이 잡히게됨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드디어 노총각 병권은 약속했던 많은 재산을 얻고, 그 집 딸과 혼인하여 큰 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상제님을 찾아와 연거푸 절을 하였다고 한다. 상제님은 말씀하셨다. 죽을 말년에도 한때를 보려면 보느니라!!
[생각해 볼 문제들]
여기에 40살이라는 나이와 노인 죽은지 3년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병권은 40살 되도록 머슴으로 있었으나, 상제님의 은총으로 머슴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40 이라는 숫자를 보니까 이런 성구가 떠오른다.
*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모두 흩어져 돌아가라. 10년 뒤에 다시 만나리라. 10년도 10년이요, 20년도 10년이요, 30년도 10년이니라.” 하시거늘 한 성도가 “40년은 10년이 아닙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40년도 10년이야 되지만 넘지는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32)
1910년 한일합방으로부터 일제 36년, 아니 1905년 을사늑약으로부터 약 40년이었다. 이것은 세운공사였다. 그러나 이 노총각 말씀은 남의 집 머슴살이하는 얘기다. 교운공사인 것 같다. 남의 집이란 누구의 집인가? 누구 집에서 머슴신앙을 한다는 것일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상제님이 어린 호연에게 들려주신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본다. 호연의 증언을 통하여 100년뒤 모든 일꾼에게 들려주려는 어떤 교훈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더 이상 남의 집 살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머슴신앙, 노예신앙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본다. 주인신앙, 진주신앙 하라는 말씀으로 생각된다.
노인 죽은 뒤 3년이 되자 드디어 신도의 혜택으로 범인이 잡힌다. 범인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일차로는 노인을 죽인 범인일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은 뜻이 있다고 본다. 홍성렬 교수부부피살 사건의 진짜 범인을 말씀하시는 것으로도 생각되기 때문이다. 3년은 어디 3년 인가? 40년간 노인과 말의 동업 장사 가운데 마지막 3년, 이번 사오미 3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댓글 모음]
아라사군사 13-09-09 00:53
사오미개명은 절대 개벽날짜가 아닙니다. 상제님의 참진리가 만천하게 드러나는 해입니다. 참이 드러남과 동시에 거짓과 위선도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일제시대에는 40년 동안 포악한 일본의 박해를 받아 상제님 진리를 제대로 펼 수 없었습니다. 수부님께서 계셨어도 말이죠.
해방 이후에는 상제님 진리가 다시 또 40년 동안 박해를 받습니다. 겉으로는 상제님 진리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자칭 대두목에 대한 숭배를 강요해왔죠.
그 시점이 이제 내년 백오제 도수가 열려 올바른 상제님 진리가 드러나고 반대로 40년 대두목신앙은 막을 내립니다.
인묘진까지는 일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사오미는 개명입니다. 만물의 실상이 다 드러납니다. 홍성렬 교수 살해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가 포털 메인에 뜨며 이슈화의 불을 재점화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라 신도가 인사에 작용한 결과입니다.
하루는 제자(弟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도적(盜賊)잡는 자(者)를 포교(捕校)라고 부르나니, 교(敎)를 전(傳)할 때에 포교(布敎)라고 일컬으라. 우리 일은 세상(世上)의 모든 불의(不義)를 밝히려는 일이니, 그러므로 세상(世上)에서 영웅(英雄)이란 칭호(稱號)를 듣는 자는 다 잡히리라.] 하시니라.
저는 얼마 전까지도 왜 포교를 도적잡는 자로 비유하셨는지 이해가 안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야 깨닫게 됐습니다. 지난날 상제님 진리 전한다면 실제로는 자칭 대두목 홍보에 모든 걸 바쳤던 포교는 진정한 상제님 진리를 전하고 일꾼을 모으는 포교가 절대로 아닙니다. 이제 진짜 포교는 그런 타락한 대두목 신앙에 빠진 잘못된 도적신앙을 다 걷어내 불의를 맑히고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천하의 도적들을 잡는 진짜 포교이며 광제창생의 출발점입니다.
아라사군사 13-09-09 01:56
증산참신앙의 지난날과 앞으로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공사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제 방식으로 해석해봤습니다.
40년 동안 머슴살이만 하다 한많은 노총각이 된 병권은 모단체에서 노예신앙해왔던 증산참신앙의 모든 분들을 상징하지 않나 생각해봤습니다.
상제님께서 병권의 따귀를 때리신 것은 자칭 대두목에 대한 머슴신앙, 노예신앙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으라는 훈계이며,
살인자에게 죽은 노인은 아마도 홍교수님을 상징하는 거 아닌가 보이구요.
살인자는 대충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구요.
즉, 증산참신앙은 노인(홍교수님?)과 그분의 죽음에 얽힌 모든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상제님 진리를 도성덕립하게 하고 후천 가을에 꿈꾸던 세상을 실현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봅니다.
해석은 여러가지로 할 수 있으니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사필귀정 13-09-09 01:58
해당성구 읽어보니 많은걸 생각케 하는군요. 심도있는 해석이 도움 됩니다. 어디서도 들을수 없는거 참신앙을 통해서 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공사의 세세한 뜻 알순 없지만, 적어도 사람을 죽인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공사인것 같군요. 이 성구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고 지공무사한 천지공사일진대 홍범초교수 살해를 지시한 교사자는 반드시 잡혀서 인벌을 받을게 분명하군요.이번 사오미가 난법의 실상이 완전히 드러나서 상제님 도의 참이 드러나는 전기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구도자 13-09-09 02:30 to 아라사군사 ↑
아라사군사님 해석이 휼륭하십니다. 다양한 생각이 모여서 보다 분명한 상제님의 뜻이 드러날 것이라 봅니다. 상제님만이 정답을 아시겠죠. 큰 틀에서 볼때 일꾼들은 더이상 대두목을 신앙하는 허망한 노예신앙 머슴신앙을 하지 말고 상제님과 수부님을 군사부로 모시는 진주신앙 주인신앙을 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살인범은 반드시 잡혀서 응분의 댓가를 받는다는 100년전 상제님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기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이 우주를 주재하시는 유일무이한 상제님, 삼계대권을 가지신 상제님과 자신을 같은 반열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진리를 내신분은 상제님이시고, 수부님이십니다. 100년 신앙사에서 피 땀 흘린 선배들이 있었기에 상제님 진리가 하나씩 하나씩 나올수 있었습니다. 일제시대와 해방직후 신앙 선배들이 이루어놓은 신앙의 업적과 공덕을 도둑질하듯 출처없이 가져다 쓰는 것은 진리 도둑질입니다. 나아가 자기가 나온 뿌리를 은폐하고 부정하는 것은 가을철 윈시반본의 진리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 개벽기에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배사율과 배은망덕은 신도에서 결코 허락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아라사군사님 화이팅 입니다!!
맑은바람 13-09-09 10:34
문득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서양 사람에게서 재주를 배워 다시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배은망덕줄에 걸리나니
이제 판밖에서 남에게 의뢰함이 없이 남모르는 법으로 일을 꾸미노라.
일본 사람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배사율(背師律)을 범하는 것이므로
장광(長廣) 팔십 리가 불바다가 되어 참혹히 망하리라
대순철학이나 대순전경 증산교사 고부인신정기 등에서 진리(교리)를 베껴서
자기논리, 자기교리의 기본틀을 삼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은폐하고 부정하고 나아가 잡아먹으려 했습니다.
그 불의를 지적하는 사람이 나오자 죽여 버렸습니다.
이는 천만고에 다시없을 배은망덕이며 배사율을 범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마지막 말씀 참혹이 망하리라 그대로 될 것입니다.
과연 어떤 판밖의 남모르는 법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참사람 13-09-09 10:50
구도자님의 글과 아라사군사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성구이네요.
모교단이 **도란 이름으로 시작한지가 내년이면 40년이 되는 갑오년입니다.
내년은 그 교단의 교주가 죽은 해로부터 3년째 되는 해입니다.
성구에서 노인이 죽은지 3년 만에 범인을 병권을 통해 신도에서 찾게 되는 공사는 의미 심장합니다.
사오미 개명..........
모든 거짓과 진실이 밝혀지는 개명의 시간이 계사, 갑오, 을미의 이 3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신앙에서 거짓을 밝히고 참을 드러내어 병권처럼 장가 못가고 노총각 노처녀로 늙어가는 이들에게 새 삶을 찾아주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독조사 13-09-09 10:51
진주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어서
남의 돈은 따보지 못하고
제돈만 잃어 바닥이 난뒤에
개평을 뜯어 새벽녘에 회복하는 수가 있느니라.
상제님 진리의 참과 정의를 들고 나오는 자가
진정 개평이 될것입니다.
불의를 보고도 꾸짖지 못하는 것은
바른 신앙, 참신앙, 참일꾼이 아닙니다.
가을은 참을 주장하고 참을 추구합니다
참된 자가 큰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참의 다른 말은 정의입니다.
상제님은 일평생 참과 정의를 추구하셨습니다.
지난 100년을 뒤돌아 보십시요.
오늘날 무엇이 남았습니까?
자칭 인간상제, 0성상제, 태*제, 황*제
상제님은 간데없고 도둑놈들만 남았습니다.
상제를 훔치는 대도적놈을 때려잡아야 합니다.
이제 올바른 군사부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상제님과 수부님 신앙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개평들이 할일 아니겠습니까?
후우움 13-09-09 13:36
참신앙여러분..다들 식사하셨는지요~^^
저도 조금전 점심먹고 댓글 남겨봅니다.
내용이 정말로 기가막히는군요~
얼마전 저의 절친한 도반이 "엄석대" 라는 인물을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오늘 웬지 그 엄석대라는 인물이 떠오르는군요..
저는 갠적으로 책도두어번 보았고 TV로도 두어번 방영해서 본적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정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나올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그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엄석대에게 끌려 다닌 어리석은 종자들도 그 끝을 달릴 듯 합니다.
다만, 뒤늦게나마 용기를 얻어 엄석대의 그늘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도 너무 오래되어 세세한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생각나지 않으나 제 느낌으론 다시TV에 방영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요즘 케이블에선 태조왕건의 거짓미륵 궁예도 나오지 않습니까~
암튼, 예사롭지가 않군요.^^
수부님께서, 후천 종자가 되려거든 충신과 진실이 제일이라~
하신말씀을 새겨봅니다.
거짓미륵의 가신이 되어 세상을 혹세무민하는 거짓종자가 되어서는 안되리라 생각해봅니다.
주인이 잘못된길을 걸으면 목숨을걸고 충언을 할 줄아는 충신이 되어야지요~
가신이 되어 온갖 악습을 행해서야 되겠습니까~ 젠장
후우움 13-09-09 16:10
잠시쉬면서 윗영화를 검색해보니 줄거리가 어렴풋이 떠오르더군요..
엄석대의 잘못을 바로잡은 새로 부임한 김선생도 결국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어 또다른 권력의 중심에서고, 엄석대도 또 다른 조직의 거물이 되었다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라..
우리는 이 대목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듯 합니다.
상제님께서 동학이 성공치 못한것은 겉으론 부국안민을 부르짖었으나 안으로는 모두가 왕후장상을 꿈꾸었기 때문이라는 준엄한 말씀을 새기고 또 새겨야할듯 합니다.
증산참신앙에서 참진리를 찾고자 부단히 애쓰시는 모든분 들..
우리는 그 어느 누구보다 상제님의 그 준엄한 말씀을 잘 아시리라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오직 천하창생을 위해서만 난법의 잘못을 찾고 오직 창생을 위해서만 참도를 세워가야하리라 생각해봅니다.
개인의 억울한 한풀이를 위해 참신앙을 부르짖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직 정의로운 마음으로 나보다는 남을 먼저 위하는 마음으로 나아갑시다.^^
일하다가 폰으로 생각나는대로 몇자 적다보니 두서가 없습니다.오늘도 다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아라사군사 13-09-09 17:07 to 구도자 ↑
사오미 개명은 자칭 대두목의 흑운(난법질)이 걷히고 상제님 진리가 마침내 광복을 맞는 마지막 3년이 될 것입니다.
구도자 13-09-09 18:27 to 아라사군사 ↑
오늘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노인은 홍교수님, 말은 그저 부두목일 뿐이고, 노인을 죽이고 재산을 다 빼앗아 혼자 꿀꺽한 용심쟁이 친구는 자칭 대두목이라고 하다가 먼저 신명계로 승천하신 분이라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역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야 함을 절감합니다.
하여튼 범인은 드러납니다.그게 이 공사의 또다른 주제인것이지요.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아라사군사 13-09-09 18:40 to 맑은바람 ↑
죄목을 열거하자면 양파껍질처럼 까도까도 끝이 없을 겁니다. 구더기, 지네가 바글바글할 겁니다.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겉모양 꾸며대도 악취는 새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잠시 속일 수 있어도 천지신명은 속지 않습니다.
아라사군사 13-09-09 18:42 to 후우움 ↑
네 영락없는 궁예입니다.
그는 궁예의 말로와 같을 것입니다.
갑오잡기 헛춤추다 천벌을 받고 망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청풍명월님의 댓글
청풍명월 아이피 124.♡.171.105 작성일
이 글이 어디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었는데 다시 보게 되니 기쁩니다.
작년 9월에 참신앙 사이트에 첨 등장했었거든요.
11월말인가 다음 까페로 옮길때 글이 사라졌었다고 알고 있어요.
이제 다시 이 글을 보게 되는군요.
견마지로님의 댓글
견마지로 아이피 124.♡.171.105 작성일다시 읽으니 새롭네요. 핵심이 모 교단 창교주가 죽은지 3년째 되는때에 범인이 잡힌다는 얘기네요. 이제 2년 지났으니 1년 남았네요. 하긴 지금 돌아가는 판국으로 볼 때 모 교단은 올해 한해를 버티기가 버거울거 같습니다. 돈 잘 내던 신도들은 서서히 동요하고 있지, 간부들도 이거 이번 사오미가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고 깨닫고 있는거 같습니다.
불가지님의 댓글
불가지 아이피 124.♡.171.105 작성일읽어보니 정말 분석이 놀랍습니다. 2013년 9월 8일 날 쓰신 글이군요. 누구신지 얼굴 한번 뵙고 싶습니다. 이처럼 상제님 공사를 뚫어지게 보고 계시군요. 김호연 성도 공사를 대충 보았는데 다시 한번 집중해서 볼 생각입니다. 김호연 성도 증언에 말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데, 확실히 김호연 성도는 말과 인연이 깊은 거 같습니다. 말 교단에서 김제 쪽에 산소 관리하는 곳이 김호연 성도님 묘소 한군데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신도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쉬쉬 하면서 몰래 한다고 하더군요.
신비전님의 댓글
신비전 아이피 124.♡.171.105 작성일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이나,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라.
이것은
萬里雲迷太乙宮(만리운미태을궁)과 서로 통하는 군요.
저는 늘 구름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태양을 가리는 구름 말입니다. 왜? 구름이 등장하는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