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극교운]三수부 원리:10竹 20말도 40강림 도수정해:<김형렬 김수부 재조명>(교운체계1)_예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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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4.♡.206.36) 작성일13-12-10 17:08 조회8,002회 댓글0건본문
[3극교운]三수부 원리:10竹 20말도 40강림 도수정해:<김형렬 김수부 재조명>(교운체계1)
증산상제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종교적 형태를 보이면서 개벽이 오는 시점까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 그리고 이합집산이 되면서 운행되는 원리를 교운공사를 통해 확정하셨고,난법이 진행된 이후 2변에 몰락하면서 진법이 서서히 드러나 3변이 마감시점에서 수렴작용을 통해 결실을 맺을 것을 예고하셨다.교운공사의 진행원리는 사물변화원리에 맞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교운을 읽을 수 있는 도식적 체계를 통해 비밀원리를 밝히고자 한다.
1.교운공사-대나무 10마디의 비밀
▣ 갑칠을 명하시어 “푸른 대나무 한 가지를 마음대로 잘라오라” 하시어 그 마디수를 세니 모두 열 마디이거늘 그 중 한 마디를 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한 마디는 두목이라. 두목은 왕래와 순회를 마음대로 할 것이요.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受敎者)의 수(數)와 서로 같으니라”하시고“하늘에 별이 몇 개나 나타났는가 올려보고 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밖으로 나가서 우러러 보니 검은 구름이 온 하늘에 가득찼는데 하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로 별 아홉 개가 반짝이거늘(대순전경 초판 번역본)
대순전경 초판 번역본에는 분명하게 10마디인데 대순전경 3판본부터 <그 마디수를 헤이니 열한마디어늘(대순전경 3판본)>로 바뀐다.그후 특정종단 도전에서도 그대로 인용하여 구체적인 행동 묘사를 거치면서<모두 열한 마디이거늘 한 마디를 끊게 하시어 무릎 밑에 넣으시고 남은 열 마디 중 끝의 한 마디를 잡으시며(도전 6:106)>로 바뀌게 된다.두목은 고천황후(고수부)님이기 때문에 대두목 욕심이 있어서 열 마디에서 한 마디를 더 넣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존 대순전경에서 이해하는 천지공사 묘사방식은 한 마디를 끊은 이후 그 한마디를 잡으면서 두목역활을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도전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바로 잡아 서술했는데,한마디를 무릎 아래에 감추고 나머지 긴 마디의 첫 한마디를 잡고 이 한마디가 두목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결국 대순전경 초판본의 정확한 해석을 한다면,10마디에서 한 마디를 끊고 무릎 아래에 놓고 나머지 아홉 마디의 첫부분 한마디를 잡고 두목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무릎에 감춘 한마디의 비밀에 집착한 나머지 그 한마디가 자신의 종단을 지목한 것이고 종통이자 진법의 판밖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고수부님의 정통맥을 잊는다면 9마디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절대 한마디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지 좋은 것은 아전인수 해석을 보이게 된다.
[그림설명-위 사진은 동곡약방의 사진이다.오른쪽 방이 동곡약방 사랑채이고,중앙부분이 김형렬 성도의 안방채이다.뒷 부분이 대나무 밭이 보인다.가로축은 대나무 한 마디와 아홉마디를 분리한 상태의 교단(공간)을 표시한 것이고,세로축은 10년을 마디로 진행되는 교운(시간)을 표시한 것이다.시공구조를 나타낸 기본 도식도 개념이다.현 상황으로 본다면 대나무 총 10마디와 시간의 10마디(10년을 일순환간)가 진행됭 상태를 보이고 있다.
아홉 마디의 두목은 고천황후(고수부)님이고 고천황후님을 포함해 모두 수교자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천황후(고수부)님을 모시고 종교를 개창했으며,창교자가 상제님을 따르는 직접적인 성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종도들을 통해 이차적으로 전해들었기 때문에 두목의 교맥임을 알 수 있다.
1900년(경자년)에 천문을 받았고 1901년부터 ~1909년까지 9년간 천지공사를 보았기 때문에 교운이 전개될 수 없었으며,1901년을 기점으로 1911년에 고천황후(고수부)님이 교운의 낙종을 하는 이치도 10수 주기의 순환사이클에 맞기 때문이다.1911년을 기점으로 10년 단위로 시간의 마디를 그리면,
1911(1)1921(2)-1931(3)-1941(4)-1951(5)-1961(6)-1971(7)-1981(8)-1991(9)-2001(10)-2011(11)...수순으로 전개된다.그런데,여기서 중요한 것은 5수(50년)와 10수(100년) 단위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100년 교운의 역사순환 사이클
1변의 사멸과정과 과도기 종파-5수 전인 4수에 일제 종교탄압으로 사멸되기 시작하면서 1변의 종말을 보이고 있다.해방이후에 일시적으로 일어난 ‘동화교(1928년)’ 후신인 ‘대법사 증산교(서울본부:이상호)’나 무극도(1918년) 후신인 ‘태극도(부산본부:조철제)’는 과도기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2변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짧다는 점이다.
2변의 생성과정과 분열기 종파-태극도에서 분립한 DS는 1969년 서울에 본부를 차리면서 본격적인 교단성장이 시작되었다.대전에 본부를 JSD도 1974년부터 준비하기 시작해 10년이 지난 1984년 본격적인 교단성장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본다면 15년의 시차 를 보이고 있다. DS는 1996년 박한경 사망이후 조직의 분열과 쇠퇴과정을 보이고 있으며,분파된 지도자들도 자신이 대두목이니 깨달음(도통)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JSD 종단도 2011년 창교주의 사망과 함께 분열이 일어나고 있으며,후계 교주는 도통을 곧 이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JSD의 창교주 사망으로 인해 DS의 창교주 사망과 비교해 15년의 시차 를 두고 일어나는 양상임을 알 수 있다.
3변의 시작과 풍류주세백년진(風流酒洗百年塵)-1911년 교운개창이후 100년이 되는 2011년 전후는 매우 의미있는 시간대로 접어들고 있다.새로운 3변의 시간들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이제 3변이 시작이기 때문에 개벽은 매우 요원한 일이고 장기적인 시간이 흐른 후에 일어날 상황이기 때문에 최소한 다음 사오미에도 개벽은 오지 않는 이치는 자명한 것이다.변화라는 것은 시간대비 사건의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지,시간을 무시한 사건의 변화만으로 변화를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결국 1변(1911~1951)이나 2변(1961~2011) 모두 40년이라는 시간사이클 안에 이루어지는 생장소멸의 변동일 뿐이다.
나) 대나무 한마디-무극교운의 진실
대나무 한마디를 무릎 아래에 두었다는 의미는 슬하의 자식처럼 여긴다는 교단을 의미하고,기타 교단과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대나무 한마디에 해당하는 교단이 화은당님이 창교한 법종교가 그 주인공이다.무릎아래 대나무는 슬하의 자식이 세운 교단인 것을 알 수 있다.
법종교는 누구의 가르침에 의한 것이 아니라,상제님의 성령에 의해 움직이면서 창교한 종단이며 못다한 후천의 기초가 되는 육기초의 유업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법종교는 증산상제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정수부(정치순)와 화은당(강순임)으로 이어지는 혈육을 신앙의 법통으로 여기기 때문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2. 말도(말점도)공사와 20년 공백의 비밀
상제님 유서인 단주수명서에는 <동곡선화현불상 유혼경각고원로(銅谷仙化現佛像 遊魂更覺故園路)>라는 구절이 있다.<구릿골(銅谷)에서 선화(仙化)했지만 불상(佛像)으로 다시 나타날(現) 예정이니, 만일 혼(魂)이라도 다시(更) 돌아와 머문다면(遊),제비산 자락에 있는 옛날(古) 모습을 갖춘 정원(園)과 거닐던 길(路)에 대한 추억들이 생각날 것이다.(覺)>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증산상제님은 1909(기유)년 6월 24일에 동곡약방에서 어천했지만 상제님의 유혼은 여전히 금산사 미륵불에 머물고 있었다.<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금산사에 들어가서 불양답이나 차지하리라." "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하시니라(대순전경 초판 해석본)>에서 알 수 있다.그런데 상제님의 유혼이 언제 금산사 미륵불에서 떠난 것인가?
▣ 정묘(丁卯 1927)년 8월 21일 부인이 고찬홍(高餐弘) 전준엽(田嗤憐) 이근목(李根陸) 등 십여명을 데리고 금산사(金山孝)에 가서 미록전(爛動股)에 치성을 올린 뒤에 대성(大聖)의 성령(聖靈)이 이제 미륵전(爾動股)을 떠나셨음을 선언하고 교도들에게 미록전(爾動般) 청바닥에 요강을 쏟으라고 명하였다. (甑山敎史)
<정묘(丁卯 1927)년 8월 21일>에서 본다면,1927년에 상제님의 유혼이 떠난 것임을 알 수 있다.증산유세에 나타난 <동곡선화현불상>에서 본다면 다시 불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유서가 전해진 시점에서 증산상제님이 불상으로 모셔진 것과 일치한다.
생전에 작성한 유서에는 <정해 사월 팔일 병오(丁亥 四月 八日 丙午)>이라면서 1947년 부처님오신날인 병오일진을 기재했다는 점이다.이 시점에서 법종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면,
▣ 정해년 삼월 삼일 기념치성을 봉행하니 성부 성모님께서 하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사월 초파일에는 성전에 영상을 모시고 식을 거행토록 하라 만일 그렇지 못하면은 너희들은 죽으리라.”고 하시더라. 이때부터 모든 식구가 합심하여 주야로 일을 하였으나 그래도 문은 미처 달지 못한 채 포장을 치고 팔일 오전 아홉시에 봉안식을 올리니(중략) 성부님의 생존 제자이신 김자현의 자제 김태진 김태준 형제가 찾아와서 상상 앞에 유서를 내놓고 간을 올리고 통곡하더라. 유서의 내역을 물으니 “김형렬씨가 종재 자현에게 맞겨주면서 후일 부합되는 곳에 전하라 하였는데 그 후 형렬님은 타개하시고 자현씨 또한 못전하고 임종시에 태준, 태진 형제분에게 맞기시며 후일 동곡에 불상을 모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전하라 하시어 지금까지 부합되는 곳이 없어 간직하고 행여 전할 곳이 없을가 하여 부모님의 유교를 실행치 못하여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던차 이곳에 기지를 정하는 날부터 유심히 바라보고 오늘에야 전하니 마음이 가볍도며 또 슬픈 눈물을 흘리더라(화은당실기)
<사월 초파일에는 성전에 영상을 모시고 식을 거행토록 하라>에서 본다면 상제님의 성령으로 화은당님에게 지시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후일 동곡에 불상을 모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전하라>에서 본다면 동곡에 증산의 미륵불상이 나타난다는 유서의 내용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유서를 보관한 사람은 유서의 마지막 글인 날짜의 의미를 몰랐겠지만,전해진 시점이 에서 유서에 나타난 날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상제님 천지공사의 정확성에 놀랄 수 밖에 없다.
1927(정묘)년 금산사 미륵불에서 상제님 유혼이 떠난 시점부터 1947(정해)년 동곡에 증산의 미륵불 영상이 세워져 다시 오기까지 20년이 걸렸다.결국 20년 말점도는 상제님 유혼이 지상의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가) 1927년이 20년 말점도 도수의 시작인 이유
정읍에 있는 보천교 성전은 1922년부터 시작해 1929년에 순차적으로 완공했다.범증산교사에 따르면, 차경석 성도는 기사(己巳 1929)년에 십일전(十一股) 신축공사가 끝나자 이해 3월 15일을 택하여 준공식과 아울러 십일전에 보천교의 신앙대상인 삼광영(三光影) 봉안식을 거행한다고 전국 각지의 교도들에게 통지하였다. 이른바 기사(己巳 1929)년 기사월(己巳月) 기사일(己巳日)에 신축궁전에서 등극식(登極式)을 거행한다는 설로 유포되었다.그러나,일제는 십일전의 성령(聖靈) 봉안식을 계속 이유를 붙여 연기조치를 해 나가다가 끝내 불허하였다.상제님은 난법의 성령봉안식에 대한 불쾌감의 표현으로 1927년 금산사 미륵불을 떠나 숨어버린 이유가 될 것이다.그림같은 전각의 사람상이 마치 장롱속의 기러기 신세로 표현한 상제님 유언과 흡사한 상황이다.
1936년 차경석의 사망과 함께 보천교와 십일전의 운명은 마감하기 시작한다.서울 조계사터에 대웅전을 짓는데 사용되었다.이듬해인 1937년 경매에 넘어가 불교계로 최종 낙찰이 된다.불교계는 1937년 3월, 십일전 건물을 답사한 이후,두 달간에 걸쳐 건물 해체 공사가 진행되어 1937년 5월 5일에 종료했다.십일전 재료가 도착하자마자 1938년 7월 27일에 기공, 9월 3일에 정초, 10월 12일에 상량(上樑)하여 11월 26일에 공사는 완료되었다. 20개월간의 공사과정이다.(작은 의미로 보면 말점도 의미의 20수와 같은 20개월 기간이다.)
3. 40년후 상제님 유혼 강림의 비밀
▣ 서울에서 10여 일을 머무르시며 여러 가지 공사를 행하시고 경복궁 앞에 벽력표(霹靂表)를 묻으신 뒤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모두 흩어져 돌아가라. 10년 뒤에 다시 만나리라. 10년도 10년이요, 20년도 10년이요, 30년도 10년이니라.” 하시거늘 한 성도가 “40년은 10년이 아닙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40년도 10년이야 되지만 넘지는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도전 5:132)
어천해인 1909년부터 40년을 계산한다면 1949년이 되며 그 이전에 다시 온다는 의미이므로 1947(정해)년 동곡의 증산 미륵불 영상이 기준이 된다.이후 그당시 산중턱의 오지에 있는 오리알터(금평저수지 완공 직전)로 이전하게 되어 1949년 삼청전을 준공하고 금불상을 안치하고,1952년 靈臺(영대)를 짓고 증산상제님과 정수부님의 체백인 遺骸(유해)를 봉안했으며,1958(戊戌)년에 天廈殿(천하전)을 짓고 증산미륵 목불상을 조성했다.금평저수지는 1957년 1월 1일 착공하여 1961년 4월 30일 준공되었으며,이로 인해 동곡은 물에 잠겼고, 오리알터는 산 중턱이 아닌 저수지 옆 인근 길가에 위치한 상황에 연출되었다.상제님 천지공사의 위대성을 다시 입증하는 근거가 되었다. 5기초 당시에 준공한 이후 확장하지 않고 산골 오지로 이사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비웃음을 보였지만 금평저수지 공사를 통해 나타난 상황을 보고 법종교의 선견지명에 놀랐다고 한다.
4. 교운공사-삼극의 비밀
교운공사는 가로(종단분열) 10수를 기본하고, 세로 10년을 기본으로 하고 정수배 반전하면서 흘러가고 있는 것이 기본 체계이다.이러한 기본 체계 이외에 삼극(무극-태극-황극)이라는 체계가 존재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상제님 천지공사에 있어서 세 명의 수부가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설명]위 그림은 삼극체계와 삼수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한 도표이다.무극은 10수이고.황극은 5수이고 태극은 1수로 배치한 조합이다.삼극상제인 증산상제님은 무극제 역할을 하면서 정수부(성모)를 배필로 삼아 아들이 아닌 딸에게 독자적인 교운공사의 독자적인 맥인 대나무 한마디 맥을 전하셨고,황극제 역할로 경진생 고천황후(고수부)님에게는 천지대권을 넘기면서 교운의 우두머리로 정하셨다.태극제 역할로 임술생 김형렬과 셋째 딸인 김말순(김수부)님을 택하셨고 그 대행자로 김형렬 성도롤 택해 전하셨다.결론적으로 무극교운,황극교운,태극교운은 그 성격과 사명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무극교운과 화은당(강순임) 사명에 대한 상징성
증산상제님은 인간으로 오시면서 신미(辛未)생으로 오셨다는 점에서 본다면, 사유위(四維位)의 진술축미 중에 10토인 미토기운이기 때문이다.인간적인 배우자로 정부인(대모)을 택하셨지만,상제님의 수종을 들었을 뿐 수부 사명을 찾을 수 없지만,강순임이라는 여식을 통해 교운을 전하셨기 때문에 사적인 영역이 아닌 중요한 사명이라고 볼 수 있다.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정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처럼 무관직의 후비(수부)가 정부인인 것이다.사적인 가정사의 영역이기 때문에 상제님 스스로 불고가사를 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며,화은당 자신도 부친의 유산상속등을 받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개척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니라.제갈량(諸葛亮)이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로 불성(不成)이라.(용화전경)
위 성구는 상제님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다.상제님 자신은 불고가사를 했으며,어떤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그래서 상제님의 천지공사가 성공한다는 것을 암시한 내용이다.무극교운에 해당하는 종단 개창의 사명을 아들에게 넘기지 않았고,후천 음도에 맞게 딸에게 개창의 주역을 삼은 것이다.야 한다.특정교단의 창교자가 자신의 대를 이을 사람으로 막대한 유산과 종통을 넘기는 것도 비교되는 대목이다.법종교가 종통이라는 의미는 아니며,종통의 한부분을 차지하는 특수목적의 부(父)에 해당하는 교맥인 것이다.화은 사후 후계자도 혈맥이 아닌 덕망있는 자에게 민주주의 방식처럼 회의를 통해 넘기는 것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상제님 부모님과 정부인에 대한 호칭 정립
상제님의 아버지는 병오(丙午:1846)생으로 존휘(尊諱)는 문회(文會)이고,어머니는 경술(庚戌:1850)생으로 성은 안동 권씨(安東權氏)요 존휘는 양덕(良德)이다. 성인이 되시는 증산상제님을 낳았으니 상제님의 아버지가 성부이고 어머니가 성모가 되는 것이 합당할 것 같지만,결론적으로 보면 4대 성인(성자)의 아버지 격에 해당하기 때문에 성부(聖父)는 상제님 자신에 해당한다.
▣ 기유(己酉 : 道紀 39, 1909)년에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천하분운(天下紛?)하여 자작사당(自作死黨)하니,이불안성상지심(以不安聖上之心하고 이불안성부지심(以不安聖父之心하고 이불안성사지심以不安敎師之心하니라.(세상이 어지러운데 스스로 죽음의 무리를 지으니 성상(聖上)의 마음을 불안케 하고 성부(聖父)의 마음을 불안케 하고 스승(敎師)의 마음을 불안케 하느니라.(도전 6:98)
<이불안성부지심(以不安聖父之心하고>에서 본다면 상제님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를 성부(聖父)로 썼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성부는 성인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 호칭으로 쓴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 따르는 신도(信徒)들이 남송에게 증산대성(甑山大聖)의 존칭이 많은데 어느 것이 옳으냐는 물음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답하였다. 「신도(神道)로 보면 이 어른의 혼백(塊塊)은 무극신(無極神) 이신지라 현금 양기천(陽氣天)의 상제위(上帝位)에서 신계(神界)를 다스리시는 신왕(神王)이시고 인도(人道)로 보면 당신의 문명(文明)에 ‘성사(聖師) 의통(醫統)’‘성지직성지업(聖之職聖之業)·‘성부(聖父) 성자(聖子) 성신(聖身)·이라 하셨으니 증산대성사(甑山大聖師)가 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증산대성사의 위격(位格)을 도덕연원(道德淵源)으로 말하면 천지직선조(天地直先祖)가 된다. 천지직선조란 상고(上古)이래로 도통연원(道通淵源)을 이어 받아 심법(心法)과 도덕(道德)으로 인도(人道)를 정화(擇化)하고 계도唯導)해온 어른들을 말하는 것이다. 증산대성사(甑山大聖師)께서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代)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라 하셨는데 이는 선천운로(先天運路)에는 복희(代義)씨가 동방도덕(東方道德)의 초대(初代) 신성(神聖)으로 천지직선조였으나 당래(當來) 후천운로(後天運路)에는 증산대성사가 천지직선조가 되셨다는 뜻이다. 증산대성사께서 팔패(八封)를 처음 그린 태호복희(太昊代義)씨를 이어 오셨으니 후천(後天) 새 천지의 ‘새 하늘남’ ‘새 땅님’ 이시다. 천지에서 도덕연원의 시조(始祖)가 천지직선조라면 각성각가(各姓各家)의 기혈연원(氣血淵源)의 시조는 인도직선조(人道直先祖)이다. 인도직선조의 심중(心中)을 먼저 밝히고 다음에 천지직선조의 심중(心中)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수도(修道)이니 증산대성사는 온 인류의 인도직선조와 천지직선조가 연결된 신명계(神明界) 곧 대화신단(大化神團)을 주재(主宰)하시는 어른이시다. 인도직선조(人道直先祖)의 정신을 함양(商養)하여 심성(心性)을 바루고 천지직선조의 길을 닦아 새 사람 되는 것이 증산상제(甑山上帝)님의 도덕(道德)이다.」 하였다. (三德敎史 130~132쪽)
<선천운로(先天運路)에는 복희(代義)씨가 동방도덕(東方道德)의 초대(初代) 신성(神聖)으로 천지직선조였으나 당래(當來) 후천운로(後天運路)에는 증산대성사가 천지직선조가 되셨다는 뜻이다.>에서 본다면 강씨가 모든 성씨의 근원이고 근원의 성씨를 택해 오셨기 때문에 상제님의 아버지는 근원성씨인 태부(太夫)이고 어머니는 태모(太母)가 합당하리라 본다.무극도 교단에서는 권씨대모(權民大母)라고 불렀던 예가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비슷한 시각일 것이며 대모(大母)의 상위개념인 태모(太母)가 맞는 개념일 것이다.
상제님의 배우자인 정부인에 대한 호칭문제에 대해 언급한다면,무극도에서는 정씨사모(鄭氏師母)로 불렀으며,화은당 실기에서는 대모(大母) 또는 성모(聖母)라고 불렀다.그렇지만 정부인이 성부(聖父)인 상제님의 배필이기는 하지만,이미 천지대권을 넘긴 고천황후(고수부)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모(聖母)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대안으로 대모(大母)는 상제님의 어머니의 호칭인 태모보다 아래격이며, 고수부님을 만나기 전에 대신(대표)하는 어머니라는 대모(代母)와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다.
다)황극교운과 고천황후의 위상
상제님은 후천에 재림할 황극제이며,황극의 대행자이자 대권을 넘길 두목으로 고천황후(고수부,고성모)님을 지목했기 때문에 황극의 상징은 갑오가 아니라 경진이 되는 것이다.경진의 지지는 사유위인 진술축미에서 진의 5토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신미생과 경진생의 공통점은 천간에 신(辛)과 경(庚)이라는 금기운의 서신(西神)이 있기 때문이다.상제님과 고천황후님이 호남서신인 것이다.
▣ 이 때 수부님께서 일어나 앉으시어 갑자기 상제님의 음성으로 경석에게 “누구냐?” 하고 물으시니 경석이 놀라며 “경석입니다.” 하거늘 또 “무슨 생이냐?” 하고 물으시니 경석이 “경진생(庚辰生)입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나도 경진생이라. 속담에 동갑 장사 이(利) 남는다 하나니 우리 두 사람이 동갑 장사 하자.” 하시고 다시 생일을 물으시니 경석이 “유월 초하루입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내 생일은 삼월 스무엿새라. 나는 낙종(落種) 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移種) 물을 맡으라. 추수(秋收)할 사람은 다시 있느니라.” 하시니라.(도전 11:19)
황극은 인간으로 보면 태어나는 순간이고,식물로 보면 씨가 발아하는 순간과 이후 성장과정을 말한다.현실세계의 모든 변화과정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나도 경진생이라. 속담에 동갑 장사 이(利) 남는다 하나니 우리 두 사람이 동갑 장사 하자.”>경진생이라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동업자적 관계이기 때문에 진짜 황극천자인 고천황후님과 가짜 황극천자인 차경석 성도의 관계가 정립되는 것이다.그러므로 황극은 경진생일 수 밖에 없는 이치를 가지고 있다.<나는 낙종(落種) 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移種) 물을 맡으라.>에서 본다면 동업이라고 할지라도 역할분담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의통성업의 대행자이자 진주의 대세 시나리오
▣ 삼인동행칠십리의 삼인이라는 것은 세 용이니 용이 셋이다. 못자리 용이 있고, 이종용이 있고, 가을용이 있으니,고씨부인(고수부)님이 못자리 용이고 차경석이가 이종용이고 가을용은 백금이라 가을용을 우리가 맞이한다.(김천수씨 증언)
<고씨부인(고수부)님이 못자리 용이고 차경석이가 이종용이고 가을용은 백금이라 가을용을 우리가 맞이한다.>에서 본다면, 도통자로 도통을 내리고 의통성업을 이룩할 교운의 지도자를 추수용으로 보았다는 것을 반증한다.여기서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본다면,만일 대두목이 온다면 대두목은 임술생이거나 개띠가 아니라 경진생이거나 용띠가 되어야 맞기 때문에 갑오생 또는 말띠의 교주는 추수하는 대행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고천황후님이 천상에서 도통을 내리고 의통성업을 진두지휘할 대두목의 위상을 가지 되는 것이며,진정한 대두목(大頭目)인 상제님을 대신할 대두목(代頭目)이 고천황후님이 되는 것이다.
다만,두목(頭目)인 고천황후님과 대두목(大頭目)인 증산상제님을 대행할 증산교단 통일의 대행자가 있다면 교운의 진주(眞主)이자 대리두목(고수부님을 대행)이 될 뿐이지 두목인 고천황후님을 넘어서는 위상의 대두목은 될 수 없는 이치가 존재한다.
만일 진주이자 대행자가 나온다면 3변 교운이 끝나가면서 교단의 연합과 융합이 이루어지는 미래 체계의 한국증산종단연합회(가칭:KJC) 마지막 임기의 연합회장이 될 가능성을 상상해 본다.그러므로,가짜 임술생의 가짜 대두목 타령과 그 후계자에 대한 자격논쟁으로 화두가 되는 오군화와 인신상화 논쟁이 얼마나 황당무게한 논쟁인지 알아야 한다.홍범초가 이루려는 유업 속에서 그 미래상을 예측해 본다.하도의 15진주 게임은 3개가 모여야 하는 이치처럼 여러단체의 연합이며,무극종단과 태극종단 그리고 황극종단의 융합에 해법이 있을 것이다.
5.태극교운과 김수부와 김형렬의 재평가
증산상제님은 삼신작용의 한 형태로 태극제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그 기운을 표현한다면 임술이 될 것이다.상제님은 임술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임술 태극제의 대행으로 임술생 김형렬 성도를 만나서 김수부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공사를 집행했다.그리고 김형렬 성도에게도 태극교운의 사명을 내린 것을 알 수 있다.
▣ 호연이 “누가 그러는데 강증산은 강아지라던대?” 하며 까르르 웃으니라.(중략) 호연이 다시 “강아지!” 하고 부르니 상제님께서 “아, 요것이 강아지라고 말래도 자꾸 강아지, 강아지 하네.” 하시거늘 이번에는 “강생이!” 하니 “강생이라고도 부르지 마라잉!” 하시고(도전 5:102)
<“누가 그러는데 강증산은 강아지라던대?”>에서 본다면 상제님 자신이 임술기운을 가진 강아지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나온다.수원(水原)나그네로 지칭되는 인물도 상제님 자신이다.수원은 물의 근원이니 강물을 의미하며,강씨의 어원을 보더라도 강가에 사는 여인에서 출생한 씨족을 의미한다.상제님이 정식으로 출세하는 후천이 오면 구한말에 태어난 강삿갓이라는 인물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최근 상제님의 진모습이 담긴 사진을 어진으로 참신앙 단체에서 보급하고 있는데,후일 어진 속의 인물이 재림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니 수원나그네의 전설을 실행하는 공사를 참신앙에서 실행한다고 평가한다.
가)상제님이 임술 테극제인 이유
▣ 증산 상제님께서는 어용(御容)이 금산 미륵불(金山彌勒佛)과 흡사하시어 용안(龍顔)이 백옥처럼 희고 두루 원만하시며 양미간에 불표(佛表)의 큰 점이 있고 천안(天眼)은 샛별과 같이 반짝이시니라. 또 목소리는 인경처럼 맑고 크시며 왼손바닥에 ‘북방 임(壬)’ 자와 오른손바닥에 ‘별 무(戊)’ 자 무늬가 있고 등에는 붉은 점으로 뚜렷하게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으며 발바닥에는 열세 개의 점이 선명하니라.(도전 3:320)
<왼손바닥에 ‘북방 임(壬)’ 자와 오른손바닥에 ‘별 무(戊)’ 자 무늬가 있고>에서 본다면,상제님 자신이 임술기운을 가진 태극제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지 대행자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임술의 또 다른 의미로 본다면,임(壬)이자 왕(王)이라는 뜻이며 오른손의 상징은 무(戊)+점(占)이므로 별의 여의주로 해석되어 별의 왕인 북극성을 의미한다.
나) 김수부 공사는 임술 태극제 후비의 자격
▣ 하루는 형렬을 불러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여자처럼 꾸미시더니 공사를 보신 뒤에 이르시기를 “수부(首婦)가 없어 임시로 공사를 치렀으니 수부를 선정하라.” 하시니라.(도전 3:92)
<형렬을 불러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여자처럼 꾸미시더니>에서 본다면 김형렬 성도를 택한 이유는 임술 태극제 기운을 가진 임술생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김형렬 성도가 여장을 한 이유는 임술 태극제에 맞는 태극후비의 기운을 빌리기 위한 것이다.태극수부 책정을 못한 상황에서 임시방편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때가 바쁜지라 일이 절박하니 너희들 중에 임술생(壬戌生)으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우라.” 하시니 형렬이 아뢰기를 “수부는 염려 마시고 사업만 추진하옵소서. 수부는 저의 딸로 들여세우겠습니다.” 하니라.(도전 10:43)
<임술생(壬戌生)으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우라.>에서 본다면 명확하게 임술생인 김형렬 성도를 지목하고 있다.그러므로 경진생 고성모님(고수부)이 황극제 후비라면 임술기운을 가진 김수부(김말순)님이 태극제 후비가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그렇기 때문에 고수부님이 후비로써 황후가 되고 천황후로 불러야 된다는 의미이며,김수부님도 후비로써 태후가 되어야 하니 천태후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다)고수부와 김수부 호칭에 대한 정립에 대해
고수부님은 고부인 고후비 고천후 등으로 불렀고,김수부님은 후비가 둘일 수 없다는 유교적 사상으로 인해 비의 존칭인 천비로 불렀다.그러나 상제님은 김수부를 후비로 부른 기록이 있기 때문에 후비로 불러야 한다.그렇다면 왜 고천후를 고천황후로 부르고 김천비를 김천태후로 불러야 한다고 이유는 무엇인가?
여전히 개벽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황제의 황비가 아닌 것이지만,이미 하늘에서는 그 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관직에 오르는 경우에 맞는 개념이다.그래서 하늘의 황극제 왕비를 뜻하는 의미의 천황후로 정명해 고수부님는 고천황후로 정명이 되는 것이며,하늘의 태극제 왕비를 뜻하는 의미의 천태로 정명해 김수부님을 김천태후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천은 상제의 위상이 아닌 천상을 의미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제- 황제 -천황제>는 천자를 의미하며,이에 따른 왕비를 < 후 -황후- 천황후>로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지상의 천자국 조선에서는 황제의 왕비를 황후로 불렀던 적이 있으며,명성황후에서 찾을 수 있고,역사적 논란이 있지만 형제 천자국 청나라에서는 광서제를 배출시키는 근원황후를 꿈꾸었기 때문에 서황후로 하지 않고 서태후 불렀다는 점이다.태후나 황후는 태극과 황극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황제국에서도 부르는 역사적 호칭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위상이 낮은 용어는 바람직하지 않다.다만 하늘에서만 이루어진 상황과 지상의 인간황제국과 다른 이유 때문에 천을 더 붙여 천황후 천태후로 불러야 한다는 이유인 것이다.세운에서 두 황후(태후)의 기운을 교운에서 배치한 지극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김수부와 고수부에 대한 호칭정립을 위한 상제님의 치절한 힌트(팁)이다.
라)천지공사에 나타난 후비소 소속 고수부와 김수부 공사의 비밀
고천황후(고수부)와 김천태후(김수부)에 대한 수부택정공사를 번갈아 보았다.그러나 후비소 소속의 두 수부에 대한 사명과 운명은 달라지게 된다.후비소에는 황극후비와 태극후비의 지위가 천지공사에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 형렬의 딸에게 명하시어 약장 주위를 세 번 돌게 하신 다음 그 옆에 서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네 몸에 천하의 재물을 둘러 주리라.” 하시니라.이어 경석에게 명하시어 <大時太祖 出世 帝王 將相 方伯 守令 蒼生點考 后妃所(대시태조 출세 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점고 후비소)>라는 글을 쓰게 하시니 경석이 후비소(后妃所)를 후비소(后?所)라 썼거늘 “잘못 썼다.” 하시며 불사르시고 다시 써서 약장에 붙이게 하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 되라.” 하시고 형렬의 딸을 돌려보내신 후에 경석으로 하여금 그 글을 거두어 불사르게 하시니라. (도전 10:43)
<蒼生點考 后妃所(창생점고 후비소)>에서 본다면,다른 공사와 달리 황극 후비소가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며,이 공사에 대한 담당이 고천황후(고부수)님이 아닌 김천태후(김수부)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그리고 이 공사를 진행하는 사명을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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