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_예지자-정감 계룡도읍은 서요동:대전공사의 비밀-조화정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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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4.♡.206.36) 작성일13-12-11 16:56 조회7,990회 댓글0건본문
증산상제님은 역사적인 인연에 따라 선택하신 전라도에서 탄강과 도통 그리고 천지공사를 보셨으며, 재림 이후에 펼쳐지는 조화정부도 전라도에 들어서도록 산하기운을 돌리는 공사를 보셨다.한국의 대표 예언서인 정감록에서도 조화정부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천지공사를 통해 잘못 알려진 예언서를 바로 잡아주는 공사를 보았다.
[정감 계룡도읍은 서요동:대전공사의 비밀-조화정부(7)]
난법의 증산교단은 상제님의 말씀을 조작하여 대두목을 자신의 교주로 조작하고,수많은 천지공사를 교주를 위해 보신 것으로 왜곡 해석하고,자신의 교단이 들어서는 지역이 조화정부가 들어선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예언서 왜곡해석을 넘어,의도된 해석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성구를 만들어 내거나,자작 성구까지 동원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20.암계룡은 동요동, 숫계룡은 기운이전하여 서요동
▣ 호남의 명산 마이산(馬耳山)은 용이 서해로 날아 뛰어드는 형국으로 음양합덕(陰陽合德)의 지리(地理)가 갊아 있는 부부산이라. 마이산 암봉의 물길은 섬진강(蟾津江)의 발원지요 수봉은 금강(錦江)의 수원지로서 그 물길이태전(太田) <대전(大田)>과 계룡산을 돌아 서해로 흘러 수(水)태극을 이루고 백두대간이 뻗어내려 마이산으로 해서 대둔산(大屯山), 계룡산(鷄龍山)으로 이어지는 맥은 산(山)태극의 형세를 이루니라. (도전 5:89)
숫마이봉에서 발원한 금강이 계룡산을 돌아 금강을 이루는 수태극이고,계룡산의 기운은 백두대간이 속리산에서 우회하여 마이산을 지나 계룡산에서 끝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사실 위 성구는 상제님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정감록에서 말하는 도읍지의 위치가 계룡산 신도안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산태극 수태극의 구체적인 풀이과정에서 나온다.새로운 도읍지가 신도안이라는 주장의 풍수이론을 대전이라는 것으로 대체하는 내용이다.이것이 성구에 들아가 마치 상제님 말씀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상제님 말씀이라면 시기와 참여한 성도 그리고 공사 내용이 나오지 않아 쉽게 추론이 가능하다.
[그림설명]왼쪽 아래 그림이 산태극 수태극의 양상을 지도 속에 나타내면서 대전이 명당이라는 것을 홍보하는 특정종단의 그림이다.산태극 수태극으로 이루어지는 해석은 맞지만,산과 물이 태극으로 이루어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지 대전이 명당이라는 것과는 인과관계가 없으며,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지역에서 명당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오른쪽 아래그림은 영남과 호남의 물기운을 설명하는 내용으로,영남물길은 모아지면서 한곳을 향하지만,호남물길은 중심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분열하기 때문에 배역하는 양상이라는 주장을 설명을 하는 그림이다.
상제님은 아버지산인 회문산의 섬진강과 어머니산인 모악산의 만경강 원평천 신평천을 통합하는 물기운을 옥정호 중심으로 만들어 전북의 산하기운을 모았다.이것이 암계룡의 모악산 천지공사이며 동요동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숫계룡의 계룡산과 금강의 기운을 모아 새로운 도읍지의 터전을 만드는 과정이 서요동의 실체인 것이다.
실제 그림상단 백두대간의 세밀한 산맥도를 보면 계룡산에서 멈추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금강의 남쪽에 있는 금남정맥은 계룡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추가로 뻗어 올라가 우회하여 부여의 도읍지 터인 부소산에서 멈춘다.그리고,다른 맥인 금강정맥(금남지맥)은 계룡산 가기 전인 만경강 상류에서 흘러나와 익산 미륵사지의 터전을 지나서 오성산을 지나 군산에서 최종적인 맥이 끝난다.
계룡산 살막이 공사와 천자피금혈 그리고 청국 광서제
▣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신과 여러 성도들을 데리고 고부군 벌미면 살막에 가시어 “충청도 계룡산에 살(煞)이 있다.” 하시고 “계룡산의 살을 막는다.” 하시며 살막이 공사를 보시니라. (도전 5:324)
위 성구 내용으로 본다면,계룡산에는 죽이는 숙살기운이 많이 때문에 살을 막는 공사를 보신 것으로 해석된다.구체적인 공사 내용은 확정하기는 무리지만, 문공신 성도가 맡고 있는 도수와 살고 있는 지명을 통해 추론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상제님께서 와룡리 문공신의 집과 운산리 신경수의 집을 왕래하시며 공사를 행하실 때 “이곳에 천자피금혈(天子被擒穴)이 있으니 이제 그 기운을 풀어 쓰리라.” 하시며(도전5:201)>라는 내용이 나온다.살막이공사는 벌미면에서 했기 때문에, 벌미면 와룡리에서 문공신 성도와 행한 천자피금도수와 연관이 있고,청국광서제에 응한 기운을 거두는 공사도 동일 지명과 인물인 와룡리 문공신 성도의 집에서<고부 와룡리 문공신의 집에 머무르시며 대공사를 행하실 때 ,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도전 5:325)>라는 내용으로 보았다.
즉 계룡산에 응한 기운에는 청국광서제의 죽음과 천자피금혈의 살기가 있다는 뜻이 되며,천자피금혈 기운으로 청국광서제가 죽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계룡산 살막이 방법론으로 계룡산 신도안 지역에 산재한 신흥종교의 터전을 밀어내고 삼군본부의 기지가 들어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도안은 고천황후의 조화정부를 상징하는 혈자리
계룡산 신도안(新都安)에 응기된 것은 새로운 도읍지가 되는 기운이며.실제 도읍지의 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신도안의 의미를 그대로 풀면,안(安)은 갓을 쓴 여자(무당=여황제)를 의미하므로 여황제의 새로운 도읍지라는 뜻으로 <고천황후의 조화정부>가 신도안이 되는 것이다.황극제는 재림하는 상제님이며, 새로운 도읍지는 조화정부의 수도이며,안은 고수부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하루는 태모님께서 정읍 칠보산(七寶山) 상봉에 이르시어 태자봉(太子峯) 공사를 보시니 이러하니라. 태모님께서 머리에 삿갓을 쓰시고 양손을 불끈불끈 쥐시면서 세 차례에 걸쳐 크게 외치시기를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도전 11:210)>에서 본다면 갓 쓴 고수부님이 안(安)의 한자를 상징하며,후천의 조화정부를 다스리는 여황제임을 알 수 있다.
천지공사에 나타난 대다수의 안(安)의 해석은 왕관을 쓴 고천황후를 상징한다고 보아야 한다.이러한 내용을 성씨로 해석하다보면, 고수부님을 칭하는 내용인 안(安)이 두목이자 대두목으로 격상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천자놀음의 논리적 도구로 전락되고 있다.
<계룡산록>에 따르면, 계룡산 제자봉(帝字峰) 밑의 지역을 예로부터 ‘제도(帝都)’라고 불렀는데, 신라 말에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와서 “중국에 황제가 있는데 작은 나라에서 이런 명칭을 쓸 수 있느냐는 항의를 받고 신도(辛都)라고 일시적으로 고쳤다가 조선 개국 초에 신도(新都)로 바꾸었다고 한다.여기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이 신도의 신(辛)이 상제님의 신미생을 의미한다는 점이다.후일 신도는 신도안(新都安)으로 바뀐 것이다.증산 상제님과 고천황후의 도읍지 기운이 담겨 있는 혈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 말기까지 이 신도안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못했는데, 누구든지 이곳에 들어와 득세하는 기미만 보이면 〈정감록〉을 꿈꾼다 하여 관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신도안이 집단적 거주지가 된 것은 1924년 동학계통의 신종교인 상제교(上帝敎) 교주 김연국(金演局)이 황해도·평안도의 신도 2,000여 명을 이끌고 이주해온 이후부터라고 한다.1975년까지 100여개 중소교단 및 신흥종교의 기지가 되었으나,1975년에는 계룡산의 국립공원화 방침에 따라 국립공원 내의 건축 및 그외의 시설물을 공원지역 밖으로 이전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며,1984년 6ㆍ20사업에 따라 신도안을 중심으로 집거하던 무속시설물이 철거되어 육ㆍ해ㆍ공군의 3군 통합기지 계룡대가 건설되었다. 계룡산 살막이 공사는 삼군본부가 들어서는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신도안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은 계룡산 봉우리안 남북 4km·동서 3km 분지형태의 지역이다.산중에 있는 분지에서는 한나라의 도읍지가 들어설 수 없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규모만 달리했지 대전도 사방 15km 분지형태의 지역임을 알 수 있다.수도가 이전하기에도 부족한 땅에 세계 조화정부가 들어선다는 주장과 해석은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
계룡산 인근은 도청소재지나 도를 다스리는 행정도시의 땅기운
▣ 하루는 어떤 사람이 계룡산 건국의 비결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동서양이 통일하게 될 터인데 계룡산에 건국하여 무슨 일을 하리오.” 하시니라. (도전 5:409)
위 성구 내용에서 본다면,전세계가 통일되는 조화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계룡산 신도안에 일국의 도읍지를 건설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애기하고 있다.
▣ 남상돈이 아뢰기를 “충청도 계룡산에 정씨(鄭氏)가 도읍을 정하여 등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니라.(중략) 담배를 피우시며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저 산이 무슨 산인고?” 하시는지라 성도들이 보매 충청도 계룡산이더라. (중략) 태모님께서 다 보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잘 누르면 도백지지(道伯之地)도 장차 멀다.” 하시니라. (도전 11:233)
위 성구내용을 본다면,계룡산 인근의 정씨왕국을 꿈꾸는 땅의 운세에 대한 평가를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여 한다.도백지지의 도백(道伯)의 의미를 본다면,도의 우두머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도지사를 의미하며.실제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도지사’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즉 계룡산 인근은 공주 세종 대전 논산이 주위를 포진하고 있다.충청남도의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1932년 이전해 80년 동안 도청소재지였다는 점에서 도청의 소재지역활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실제 세종시를 본다면,수도이전이 아닌 행정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실제적으로 본다면 도(지방)를 거느리는 살림살이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게룡산 인근이 한 나라의 도읍지도 못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잘 누르면 도백지지(道伯之地)도 장차 멀다>는 내용에는 잘 누르면(개발하면) 도청소재지나 도를 거느리는 행정도시 역할하기에도 벅차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있다.
정씨 계룡산왕국의 기운 변경하는 천지공사
▣ 성도들이 계룡산(鷄龍山) 정씨 왕국에 대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모든 섬과 산을 샅샅이 뒤지고 물밑까지 더듬어 보았나니 정씨가 몸 붙여 일 벌일 곳이 어디 있으리오. 그런 생각은 다 버릴지어다.” 하시고 “속담에 ‘정가를 방문하면 방정(訪鄭)맞다.’ 하고, 또 사리가 밝으면 ‘내정(來鄭)이 있다.’ 하나니 내가 그 기운을 뽑아 내정(內鄭)으로 정하여 하동 정씨(河東鄭氏) 가문에 취객(娶客)이 되었노라.” 하시니라. (도전 4:70)
<내가 그 기운을 뽑아 내정(內鄭)으로 정하여 하동 정씨(河東鄭氏) 가문에 취객(娶客)이 되었노라.>에서 본다면,정씨 기운을 거두는 공사를 거두면서 정감록에 담긴 기운을 변경하는 공사를 보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장감록에서 말하는 정씨왕국은 한나라의 도읍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이 때 경석이 방으로 들어오니 흘겨보며 말씀하시기를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다시 누우시니라.(도전 10:58)
▣ “정읍은 왕자포정지지(王者布政之地)요, 정(井) 자는 새암 정 자 아니냐.” 하시니라. (도전 6:37)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에서 본다면,차경석에게 정감록의 정씨기운을 붙였기 때문에 정씨라고 부르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에서 장감록의 계룡도읍지를 정읍으로 옮기는 것이 된다.
<정읍은 왕자포정지지(王者布政之地)요>에서 본다면 왕자(王者)가 학습하는 땅이며,정감록에서 말하는 정씨의 도읍지를 상징하는 정(井)을 지목한 것이다.참고로 정읍은 풍수로 보면 행주(行舟)형으로 배가 다니는 형상이라고 하며,여전히 정읍땅은 지하에 물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고 알려지고 있다.정감록의 계룡도읍지 기운을 차경석 성도에게 변경하여 후천의 도읍지를 예정하는 공사를 본 것이다.
▣ 제자가 여쭈기를, 우리나라에 정감록이라는 비결이 있는데 믿을 만 하옵니까?말씀하시기를, 이씨 왕조에 거짓으로 조작된 것이니라.(이중성의 천지개벽경 해석본)
▣ 말씀하시기를 “우리 국운(國運)을 위하여 정(鄭)씨를 없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정씨의 노래가 끊이지 않으니 혹 이(李)씨가 정씨의 화(禍)를 받을 염려가 있겠으므로 이제 그 살(煞)을 풀기 위하여 이씨 기운을 돋우고 정씨 기운을 꺾는 공사를 보았노라.” 하시니라. (도전 5:239)
▣ 하루는 한 제자가 정감록에 대해 물으니 “그거 다 쓸데없는 소리다. 허사다.” 하니라. (도전 10:112)
<이씨 왕조에 거짓으로 조작된 것이니라>에서 본다면,원래 내려오는 정감록의 예언 내용이 있지만 이씨조선이 들어서면서 의도된 조작이라고 말씀하셨다.이러한 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 <혹 이(李)씨가 정씨의 화(禍)를 받을 염려가 있겠으므로>라는 내용에서 잘 나타나 있다.성동격서의 내용대로 정씨를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이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정감록은 정씨가 나라는 세운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세우는 상징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그거 다 쓸데없는 소리다. 허사다.>라고 상제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미 정감록은 왜곡된 내용이며,왜곡된 내용의 기운을 변경하는 공사를 보셨고,실제 계룡산 신도안 기운을 변경하여 새로운 도읍지 공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명성황후와 암수계룡-모악산 금산사와 계룡산 중악단
▣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주대명이 금산사 미륵불에 기도하여 소원을 이루었고, 지금 대한제국의 민비가 모든 산의 모든 부처에게 빌되 오직 금산사에 빌지 않았느니라.(이중성의 천지개벽경 해석본)
<대한제국의 민비가 모든 산의 모든 부처에게 빌되 오직 금산사에 빌지 않았느니라.>에서 본다면 암계룡인 모악산의 금산사에게 빌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를 들어주지 못했다는 내용이 나온다.실제로 명성황후는 숫계룡인 계룡산의 산신각과 석가불에 찾아서 제사를 지낸 적이 있다는 점에서 암계룡인 모악산과 숫계룡인 계룡산의 권능에 대한 비교가 나온다.
정씨왕국 8백년의 도읍지가 계룡산이라는 참언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후에 특히 널리 퍼졌으며,흥선대원군은 팔도의 모든 정감록을 볼온서적이라고 취급해 금서로 지정했으며,계룡산 출입은 물론 신당과 굿당들도 봉쇄조치를 취했다.며느리인 명성황후가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정쟁에서 승리한 이후,명성황후는 조선왕국을 잇고자 계룡산 연천봉에서 기도를 했고,이듬해인 1874년 순종을 낳았다. 1879년 계룡산의 한 절을 중악단이라 고쳐짓고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했으며,천봉에 있는 등운암의 이름을 정씨를 누른다는 뜻으로 압정사(壓鄭寺)로 고치는 등 많은 노력을 한다.대원군과 다른 행보를 보인 명성황후는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것을 본받아 계룡산신과 계룡산에 있는 부처에게 기도를 드린 것이다.그러나,명성황후의 기도는 들어주지 못한 이유를 상제님은 암계룡인 금산사 미륵불에 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21.생문방의 종착지는 서요동, 둔문방의 상징은 동요동 평사낙안
[그림설명]왼쪽 아래부터 본다면, 숫마이봉에서 발원한 금강은 용담호를 거쳐 무주군 금산군 옥천군을 지나 대청호에 이르고,대청호에서 재출발한 물길은 대전을 돌아 세종시를 거쳐 공주와 부여를 지나 오성산과 군산까지 도달한다.서요동을 상징하는 지역이 진정한 숫계룡이자 서요동인 것을 알 수 있다.옥경대가 건설될 만경강 일대를 본다면,상류에 고산이 존재한다.만경강에 들어설 36만 옥경대는 실제 고씨가 다스린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오성산에 만국영사관이 있고,인근 세종시에 한국의 행정을 담당하는 새종시가 있기 때문에 세종시가 만국영사관의 한국 대표지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계룡산을 중심으로 4개의 지역이 존재하는데,빨간색은 행정구역상의 면적이다.실제 대전을 본다면 주변이 산으로 구성되어 실제 거주면적인 3/4 정도 차지하고 있다.타 도시와 비교해서 본다면 공주보다 적고 세종시나 논산시와 비슷한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거주 면적으로 보면 논산시가 더 크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실제 조화정부가 들어설 전북7군지역은 논산의 7배에 해당하는 크기이며,새만금과 서해로 확장하는 배후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금강의 다른 발원지(지도상의 오른쪽 상단)를 본다면,속리산이 나온다.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만수계곡이 발원지인데,상제님 응기신이 만수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또한,미륵불 신앙의 대중화이자 상제님 탄강의 인연을 만든 진표율사가 창건한 모악산 금산사 이외에 다른 절인 속리산 법주사가 위치해 있다.<진표는 미륵불의 삼회설법의 구원 정신을 받들어 모악산 금산사를 제1도장, 금강산 발연사를 제2도장, 속리산 길상사를 제3도장으로 정하고 용화도장을 열어 미륵존불의 용화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십선업(十善業)을 행하라는 미륵신앙의 기틀을 다지고 천상 도솔천으로 올라가니라. (도전 1:7)>속리산 법주사의 기운을 받고 있는 것이 계룡산과 하류지역인 서요동(군산.오성산)지역이다.속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충주호를 거쳐 경기도 여주 양평을 지나 팔당댐에 이르고 한강까지 이어진다.속리산이 한강과 금강의 발원지임을 알 수 있으며.남조선배의 중심축임을 알 수 있다.
청풍은 충청도 계룡산에서 출발하는 생문방의 기운
속리산은 산의 중심이고.대전은 대한민국 교통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대전의 동쪽에서 발원한 대청호가 청풍의 의미를 그대로 암시하고 있으며,대청의 청(淸)은 청(靑)과 같은 의미이며,동방이자 봄 그리고 생(生)을 의미한다.
청풍명월 금산사(淸風明月 金山寺)에 나오는 앞 구절에 해당하는 청풍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이 기운이 금강을 통해 군산과 오성산인 서요동으로 흘러간다는 것이 중요하며,계룡산 신도안의 새로운 도읍지 기운이 서요동에서 발현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서울은 사문방(死門方)이요, 충청도는 생문방(生門方)이요, 전라도는 둔문방(遁門方)이니 태전으로 내려서야 살리라. (도전 5:406)
위 성구 내용을 본다면,서울은 사문방이고 충청도가 생문방으로 나온다.이는 방위학상의 의미로 후천개벽이 되면 지축이 횡립되어 한반도가 가로축이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를 두고 본다면 서울이 서쪽에 해당하고,충청도가 동쪽에 해당한다.서금인 서울이 사문방이고,동목인 충청도가 생문방인 것이다.또한,향후 남조선인 대전이남 지역이 발전하기 때문에 생문방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생문방이 흐르는 방위와 종착지가 군산지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실제 전라도는 둔문방이자 피난방위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고, 전라도 진정한 태전으로 내려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 논리의 비약이라고 볼 수 있지만,천지공사에서는 나타난 생문방의 의미와 지역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있다.
생문방의 상징과 종착지는 군산
▣ 고후비님이 김제 조종골을 떠나오실 적에, 육임(六任)과 八卦(팔괘)와 십이(十二)며 이십사(二十四)를 싸 가지고 오시다가, 육임과 팔괘는 김제에 오시어 땅에다 묻으시고 땅을 세 번 구르시더라. 또 십이는 이리에 가시어 묻으시며 땅을 세 번 구르시고, 바둑돌과 웇판은 옥구에다 묻게 하시고 종도 열 사람을 데리고 공사를 행하시고 가라사대 "내가 오십토(五十土)를 세 곳에 나누어 놓았느니라. 내가 마음먹고 하는 일은 천지의 귀신도 모르는 일이니라.
십오(十五) 건곤주(乾坤呪)로 호흡공부 하라.사람의 코가 중앙이요 입속의 혀바닥이 조화본이며,귀는 들으라고 마련한 것 눈은 보라고 마련한 것(이다).입은 사문(死門)인 연고로 함부로 말하면 못쓰며, 항문은 생문(生門)이라,넉동배기 윷놀이에 빼는 곳이 생문이니라." 하시니라. (선도신정경)
위 성구 내용으로 본다면,<바둑돌과 웇판은 옥구에다 묻게 하시고>에서 나오는 오선위기 기운은 옥구에 존재한다.옥구는 군산 인근지역이므로 군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항문은 생문(生門)이라,넉동배기 윷놀이에 빼는 곳이 생문이니라.>에서 본다면,윷판을 묻은 군산(옥구)이 생문이자 항문으로 보아야 한다.군산이 항문으로 보는 이유는 다른 천지공사에서도 군산을 항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조선이자는 지명을 어체인 물고기에 비유하면서 설명한 적이 있다.
나주 패운의 올바른 해석과 ‘작은 한양’
▣ 말씀하시기를, 정읍 군창 나주에서 먼저 일어나노라.제자가 여쭈기를, 대병이 어째서 호남의 세 군에서 먼저 일어나나이까?말씀하시기를, 나주는 망하는 운이요, 군창은 어복이요, 정읍은 구세천명이 이 곳에서 때를 기다리노라.(이중성 천지개벽경)
▣말씀하시기를 “처음 발병하는 곳은 조선이니라. 이는 병겁에서 살리는 구원의 도(道)가 조선에 있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세간에 ‘광라지지(光羅之地)를 밟지 못하리라.’ 하는 말이 있사온데 무슨 연고입니까?” 하니 “광라(光羅)의 땅은 패운(敗運)에 들어서 있느니라.” 하시니라.(도전 7:40)
<군창은 어복이요>라는 성구 내용에서 본다면, 군산을 의미하는 군창이 어복인 고기의 창자로 비유햇다.창자는 사람으로 본다면 항문(배설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주는 망하는 운인 패운(敗運)이 들어서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는데,이를 옮긴 이가 많은 한자 중에 패(敗)를 골랐다고 본다.그러나 열고 닫는 개폐(開閉)를 뜻하는 폐일수 있다고 본다.지운상으로 남조선의 마지막 땅 끝에 해당하기 때문이다.나주가 운이 닫히기 때문에 어복을 상징하는 군산이 병겁발생(썩는다고)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화순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절이다.수많은 창건 설화가 내려오는데,풍수로 보는 내용을 소개하자면,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보고 배모양과 같다고 보았으며,우리나라 지형을 배로 비유하면서 태백산과 금강산은 뱃머리이고,배의 꼬리는 월출산과 한라산이고,부안의 변산은 배의 진행방향을 조절하는 키이고,지리산은 삿대로 판단했다.이에 뱃구레에 해당하는 곳인 화순에 무게가 실려야 하므로 천불천탑을 쌓았다고 한다.이 내용을 토대로 본다면,뱃구레가 닫힌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뱃구레는 사람이나 짐승의 배안을 말하는 복부를 의미하기도 한다.즉 군산과 나주가 사람으로 보면 복부이고,배로 보면 배의 격식구조 안으로 이해하면 된다.
<‘광라지지(光羅之地)를 밟지 못하리라.’>는 예언서에 나온 애기로 추론되며, 괴질의 기운이 상서로운 나주에 밟지 못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점이며,<“광라(光羅)의 땅은 패운(敗運)에 들어서 있느니라.”>에서 본다면,실패하는 의미의 패(敗)가 아닌 닫히는 폐(閉)의 폐운으로 해석해야 한다. 호남의 운이 거기까지 미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나주는 예로부터 한양의 구조와 닮아 ‘작은 한양’이라는 별칭을 받은 지역이기도 하다.
▣ 어자는 생선이라 생선복중 염장이라 생문방을 들어가니 중알일성 분명하다( 초당에 춘몽- 용화전경)
위 내용에서 본다면,생선의 어복에 들어가는 것을 생문방으로 표현한 것이다.즉 어복인 군산을 의미하며, 군산 인근에 오성산이 있고 장상기지인 옥구가 있기 때문이다.선도신정경에는 <옥구는 닷줄 장상지지요>라면서 장상신이 결집하는 지운이 응기한 곳으로 지목하고 있다.(어복은 배로 보면 노를 저을 수 있는 도사공 자리이기 때문이다)
▣또 어느날 공사 후에 고후비께서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오성산에는 오성이 있고 오성산에는 서요동이 있고 오성산에는 사옥재가 있지 아니하더냐.이곳이 오성산(五聖山)이니 오선위기(五仙圍碁) 도수를 끌어다가 이 곳에 붙여 쓰니라.(선도신정경)
▣ 하루는 태모님께서 옥구 선연리 삼불산(三佛山)에서 장상(將相) 집결 공사를 보시며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사람도 참석해야 할 것 아니냐. 장상신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삼불산 아래에 송촌(松村)이 있고, 송촌 건너편에 선인옥녀봉(仙人玉女峯)이 있으니 선인옥녀봉이 자하도, 삼불산의 운수로다. 삼산(三山)의 불로초가 이 아니냐. 상등, 중등, 하등이 오십토 중앙이요 도읍을 다시 옮겨 천자국(天子國)이 이 아니냐. 천자신이 월명산(月明山) 천하봉에 임하였느니라. (도전 11:379)
<오성산에는 오성이 있고 오성산에는 서요동이 있고>에서 본다면 오성산에 오성기운이 존재하고,서요동으로 불리웠기 때문에,이곳이 도읍지의 서쪽이 된다는 의미이다.<옥구 선연리 삼불산(三佛山)에서 장상(將相) 집결 공사>에서 본다면,장상신의 기운이 응기했기 때문에 36만 옥경대가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도읍을 다시 옮겨 천자국(天子國)이 이 아니냐.>에서 본다면 도읍지를 의미하는 기운을 응기시켰다는 점에서 계룡산 신도안 기운을 여기에 발현시킨 것이다.<천자신이 월명산(月明山) 천하봉에 임하였느니라.>에서 본다면,정도령에 해당하는 황극제의 기운이 군산에 있는 월명산에 임했기 때문에 새로운 도읍지이자 조화정부의 터전이 된다.
명월은 서요동 옥구에서 떠 오르는 고천황후를 의미
▣ 어느 그믐날 임피 이서방의 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게 되었더니, 그집 주인이 들어오며 가로대 "사방이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하며, "달빛이 있으면 오직이나 좋을까." 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달빛이 있으면 좋겠느냐."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대 "참으로 좋겠나이다." 하니, "그러면 달 보러 가세." 하시며 주인을 데리고 오성산(五聖山)에 오르시여 동쪽을 바라보라 하시거늘, 이르시는 대로 동쪽을 바라보니 과연 둥근달이 환하여 참으로 휘황찬란하더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오성산(五聖山)에 오르시여~>에서 본다면 둥근 달이 떠 오른다는 내용이 나온다.밤이라는 것은 후천을 상징하며,달은 고수부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오성산이 바로 명월을 상징하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 어느날 신정공사에 고후비님께서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무신(戊申) 기유(己酉)에 천지가 개로하니 무우 뽑다 들킨격 되느니라 옥구는 닷줄 장상지지요 임피는 흑운명월(黑雲明月) 도수니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상제께서 섣달 그믐날 저녁에 임피에서 달 뜨게 하셨음을 알라."(선도신정경)
<임피는 흑운명월(黑雲明月) 도수니라.>에서 본다면,검은 구름속에 밝은 달을 암시하고 있으며,명월이 의미하는 지명이 임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임피(臨陂)의 피(陂)는 제방 옆에 파도를 의미하고 있다.즉 물결을 피한다는 의미도 있지만,물결이 끝나는 제방이므로 육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조선배의 착륙지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남조선배 상륙을 알리는 배말뚝 공사를 오성산에 보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후천의 도읍지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천자신이 월명산(月明山) 천하봉에 임하였느니라. 도전 11:379>에서 본다면 월명산의 이름이 밝은 달이며,군산 월명공원의 월명산이외에도 군산의 북쪽 금강을 넘어 서천군 비인면에도 월명산이 있고,부여와 보령의 경계인 보령시 미산면에도 월명산이 있다.군산 인근에만 3개의 월명산이 집중적으로 존재한다.
[정감 계룡도읍은 서요동:대전공사의 비밀-조화정부(7)]
난법의 증산교단은 상제님의 말씀을 조작하여 대두목을 자신의 교주로 조작하고,수많은 천지공사를 교주를 위해 보신 것으로 왜곡 해석하고,자신의 교단이 들어서는 지역이 조화정부가 들어선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예언서 왜곡해석을 넘어,의도된 해석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성구를 만들어 내거나,자작 성구까지 동원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20.암계룡은 동요동, 숫계룡은 기운이전하여 서요동
▣ 호남의 명산 마이산(馬耳山)은 용이 서해로 날아 뛰어드는 형국으로 음양합덕(陰陽合德)의 지리(地理)가 갊아 있는 부부산이라. 마이산 암봉의 물길은 섬진강(蟾津江)의 발원지요 수봉은 금강(錦江)의 수원지로서 그 물길이
숫마이봉에서 발원한 금강이 계룡산을 돌아 금강을 이루는 수태극이고,계룡산의 기운은 백두대간이 속리산에서 우회하여 마이산을 지나 계룡산에서 끝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사실 위 성구는 상제님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정감록에서 말하는 도읍지의 위치가 계룡산 신도안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산태극 수태극의 구체적인 풀이과정에서 나온다.새로운 도읍지가 신도안이라는 주장의 풍수이론을 대전이라는 것으로 대체하는 내용이다.이것이 성구에 들아가 마치 상제님 말씀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상제님 말씀이라면 시기와 참여한 성도 그리고 공사 내용이 나오지 않아 쉽게 추론이 가능하다.
[그림설명]왼쪽 아래 그림이 산태극 수태극의 양상을 지도 속에 나타내면서 대전이 명당이라는 것을 홍보하는 특정종단의 그림이다.산태극 수태극으로 이루어지는 해석은 맞지만,산과 물이 태극으로 이루어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지 대전이 명당이라는 것과는 인과관계가 없으며,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지역에서 명당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오른쪽 아래그림은 영남과 호남의 물기운을 설명하는 내용으로,영남물길은 모아지면서 한곳을 향하지만,호남물길은 중심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분열하기 때문에 배역하는 양상이라는 주장을 설명을 하는 그림이다.
상제님은 아버지산인 회문산의 섬진강과 어머니산인 모악산의 만경강 원평천 신평천을 통합하는 물기운을 옥정호 중심으로 만들어 전북의 산하기운을 모았다.이것이 암계룡의 모악산 천지공사이며 동요동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숫계룡의 계룡산과 금강의 기운을 모아 새로운 도읍지의 터전을 만드는 과정이 서요동의 실체인 것이다.
실제 그림상단 백두대간의 세밀한 산맥도를 보면 계룡산에서 멈추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금강의 남쪽에 있는 금남정맥은 계룡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추가로 뻗어 올라가 우회하여 부여의 도읍지 터인 부소산에서 멈춘다.그리고,다른 맥인 금강정맥(금남지맥)은 계룡산 가기 전인 만경강 상류에서 흘러나와 익산 미륵사지의 터전을 지나서 오성산을 지나 군산에서 최종적인 맥이 끝난다.
계룡산 살막이 공사와 천자피금혈 그리고 청국 광서제
▣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신과 여러 성도들을 데리고 고부군 벌미면 살막에 가시어 “충청도 계룡산에 살(煞)이 있다.” 하시고 “계룡산의 살을 막는다.” 하시며 살막이 공사를 보시니라. (도전 5:324)
위 성구 내용으로 본다면,계룡산에는 죽이는 숙살기운이 많이 때문에 살을 막는 공사를 보신 것으로 해석된다.구체적인 공사 내용은 확정하기는 무리지만, 문공신 성도가 맡고 있는 도수와 살고 있는 지명을 통해 추론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상제님께서 와룡리 문공신의 집과 운산리 신경수의 집을 왕래하시며 공사를 행하실 때 “이곳에 천자피금혈(天子被擒穴)이 있으니 이제 그 기운을 풀어 쓰리라.” 하시며(도전5:201)>라는 내용이 나온다.살막이공사는 벌미면에서 했기 때문에, 벌미면 와룡리에서 문공신 성도와 행한 천자피금도수와 연관이 있고,청국광서제에 응한 기운을 거두는 공사도 동일 지명과 인물인 와룡리 문공신 성도의 집에서<고부 와룡리 문공신의 집에 머무르시며 대공사를 행하실 때 ,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도전 5:325)>라는 내용으로 보았다.
즉 계룡산에 응한 기운에는 청국광서제의 죽음과 천자피금혈의 살기가 있다는 뜻이 되며,천자피금혈 기운으로 청국광서제가 죽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계룡산 살막이 방법론으로 계룡산 신도안 지역에 산재한 신흥종교의 터전을 밀어내고 삼군본부의 기지가 들어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도안은 고천황후의 조화정부를 상징하는 혈자리
계룡산 신도안(新都安)에 응기된 것은 새로운 도읍지가 되는 기운이며.실제 도읍지의 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신도안의 의미를 그대로 풀면,안(安)은 갓을 쓴 여자(무당=여황제)를 의미하므로 여황제의 새로운 도읍지라는 뜻으로 <고천황후의 조화정부>가 신도안이 되는 것이다.황극제는 재림하는 상제님이며, 새로운 도읍지는 조화정부의 수도이며,안은 고수부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하루는 태모님께서 정읍 칠보산(七寶山) 상봉에 이르시어 태자봉(太子峯) 공사를 보시니 이러하니라. 태모님께서 머리에 삿갓을 쓰시고 양손을 불끈불끈 쥐시면서 세 차례에 걸쳐 크게 외치시기를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도전 11:210)>에서 본다면 갓 쓴 고수부님이 안(安)의 한자를 상징하며,후천의 조화정부를 다스리는 여황제임을 알 수 있다.
천지공사에 나타난 대다수의 안(安)의 해석은 왕관을 쓴 고천황후를 상징한다고 보아야 한다.이러한 내용을 성씨로 해석하다보면, 고수부님을 칭하는 내용인 안(安)이 두목이자 대두목으로 격상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천자놀음의 논리적 도구로 전락되고 있다.
<계룡산록>에 따르면, 계룡산 제자봉(帝字峰) 밑의 지역을 예로부터 ‘제도(帝都)’라고 불렀는데, 신라 말에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와서 “중국에 황제가 있는데 작은 나라에서 이런 명칭을 쓸 수 있느냐는 항의를 받고 신도(辛都)라고 일시적으로 고쳤다가 조선 개국 초에 신도(新都)로 바꾸었다고 한다.여기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이 신도의 신(辛)이 상제님의 신미생을 의미한다는 점이다.후일 신도는 신도안(新都安)으로 바뀐 것이다.증산 상제님과 고천황후의 도읍지 기운이 담겨 있는 혈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 말기까지 이 신도안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못했는데, 누구든지 이곳에 들어와 득세하는 기미만 보이면 〈정감록〉을 꿈꾼다 하여 관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신도안이 집단적 거주지가 된 것은 1924년 동학계통의 신종교인 상제교(上帝敎) 교주 김연국(金演局)이 황해도·평안도의 신도 2,000여 명을 이끌고 이주해온 이후부터라고 한다.1975년까지 100여개 중소교단 및 신흥종교의 기지가 되었으나,1975년에는 계룡산의 국립공원화 방침에 따라 국립공원 내의 건축 및 그외의 시설물을 공원지역 밖으로 이전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며,1984년 6ㆍ20사업에 따라 신도안을 중심으로 집거하던 무속시설물이 철거되어 육ㆍ해ㆍ공군의 3군 통합기지 계룡대가 건설되었다. 계룡산 살막이 공사는 삼군본부가 들어서는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신도안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은 계룡산 봉우리안 남북 4km·동서 3km 분지형태의 지역이다.산중에 있는 분지에서는 한나라의 도읍지가 들어설 수 없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규모만 달리했지 대전도 사방 15km 분지형태의 지역임을 알 수 있다.수도가 이전하기에도 부족한 땅에 세계 조화정부가 들어선다는 주장과 해석은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
계룡산 인근은 도청소재지나 도를 다스리는 행정도시의 땅기운
▣ 하루는 어떤 사람이 계룡산 건국의 비결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동서양이 통일하게 될 터인데 계룡산에 건국하여 무슨 일을 하리오.” 하시니라. (도전 5:409)
위 성구 내용에서 본다면,전세계가 통일되는 조화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계룡산 신도안에 일국의 도읍지를 건설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애기하고 있다.
▣ 남상돈이 아뢰기를 “충청도 계룡산에 정씨(鄭氏)가 도읍을 정하여 등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니라.(중략) 담배를 피우시며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저 산이 무슨 산인고?” 하시는지라 성도들이 보매 충청도 계룡산이더라. (중략) 태모님께서 다 보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잘 누르면 도백지지(道伯之地)도 장차 멀다.” 하시니라. (도전 11:233)
위 성구내용을 본다면,계룡산 인근의 정씨왕국을 꿈꾸는 땅의 운세에 대한 평가를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여 한다.도백지지의 도백(道伯)의 의미를 본다면,도의 우두머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도지사를 의미하며.실제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도지사’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즉 계룡산 인근은 공주 세종 대전 논산이 주위를 포진하고 있다.충청남도의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1932년 이전해 80년 동안 도청소재지였다는 점에서 도청의 소재지역활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실제 세종시를 본다면,수도이전이 아닌 행정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실제적으로 본다면 도(지방)를 거느리는 살림살이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게룡산 인근이 한 나라의 도읍지도 못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잘 누르면 도백지지(道伯之地)도 장차 멀다>는 내용에는 잘 누르면(개발하면) 도청소재지나 도를 거느리는 행정도시 역할하기에도 벅차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있다.
정씨 계룡산왕국의 기운 변경하는 천지공사
▣ 성도들이 계룡산(鷄龍山) 정씨 왕국에 대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모든 섬과 산을 샅샅이 뒤지고 물밑까지 더듬어 보았나니 정씨가 몸 붙여 일 벌일 곳이 어디 있으리오. 그런 생각은 다 버릴지어다.” 하시고 “속담에 ‘정가를 방문하면 방정(訪鄭)맞다.’ 하고, 또 사리가 밝으면 ‘내정(來鄭)이 있다.’ 하나니 내가 그 기운을 뽑아 내정(內鄭)으로 정하여 하동 정씨(河東鄭氏) 가문에 취객(娶客)이 되었노라.” 하시니라. (도전 4:70)
<내가 그 기운을 뽑아 내정(內鄭)으로 정하여 하동 정씨(河東鄭氏) 가문에 취객(娶客)이 되었노라.>에서 본다면,정씨 기운을 거두는 공사를 거두면서 정감록에 담긴 기운을 변경하는 공사를 보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장감록에서 말하는 정씨왕국은 한나라의 도읍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이 때 경석이 방으로 들어오니 흘겨보며 말씀하시기를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다시 누우시니라.(도전 10:58)
▣ “정읍은 왕자포정지지(王者布政之地)요, 정(井) 자는 새암 정 자 아니냐.” 하시니라. (도전 6:37)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에서 본다면,차경석에게 정감록의 정씨기운을 붙였기 때문에 정씨라고 부르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에서 장감록의 계룡도읍지를 정읍으로 옮기는 것이 된다.
<정읍은 왕자포정지지(王者布政之地)요>에서 본다면 왕자(王者)가 학습하는 땅이며,정감록에서 말하는 정씨의 도읍지를 상징하는 정(井)을 지목한 것이다.참고로 정읍은 풍수로 보면 행주(行舟)형으로 배가 다니는 형상이라고 하며,여전히 정읍땅은 지하에 물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고 알려지고 있다.정감록의 계룡도읍지 기운을 차경석 성도에게 변경하여 후천의 도읍지를 예정하는 공사를 본 것이다.
▣ 제자가 여쭈기를, 우리나라에 정감록이라는 비결이 있는데 믿을 만 하옵니까?말씀하시기를, 이씨 왕조에 거짓으로 조작된 것이니라.(이중성의 천지개벽경 해석본)
▣ 말씀하시기를 “우리 국운(國運)을 위하여 정(鄭)씨를 없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정씨의 노래가 끊이지 않으니 혹 이(李)씨가 정씨의 화(禍)를 받을 염려가 있겠으므로 이제 그 살(煞)을 풀기 위하여 이씨 기운을 돋우고 정씨 기운을 꺾는 공사를 보았노라.” 하시니라. (도전 5:239)
▣ 하루는 한 제자가 정감록에 대해 물으니 “그거 다 쓸데없는 소리다. 허사다.” 하니라. (도전 10:112)
<이씨 왕조에 거짓으로 조작된 것이니라>에서 본다면,원래 내려오는 정감록의 예언 내용이 있지만 이씨조선이 들어서면서 의도된 조작이라고 말씀하셨다.이러한 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 <혹 이(李)씨가 정씨의 화(禍)를 받을 염려가 있겠으므로>라는 내용에서 잘 나타나 있다.성동격서의 내용대로 정씨를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이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정감록은 정씨가 나라는 세운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세우는 상징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그거 다 쓸데없는 소리다. 허사다.>라고 상제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미 정감록은 왜곡된 내용이며,왜곡된 내용의 기운을 변경하는 공사를 보셨고,실제 계룡산 신도안 기운을 변경하여 새로운 도읍지 공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명성황후와 암수계룡-모악산 금산사와 계룡산 중악단
▣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주대명이 금산사 미륵불에 기도하여 소원을 이루었고, 지금 대한제국의 민비가 모든 산의 모든 부처에게 빌되 오직 금산사에 빌지 않았느니라.(이중성의 천지개벽경 해석본)
<대한제국의 민비가 모든 산의 모든 부처에게 빌되 오직 금산사에 빌지 않았느니라.>에서 본다면 암계룡인 모악산의 금산사에게 빌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를 들어주지 못했다는 내용이 나온다.실제로 명성황후는 숫계룡인 계룡산의 산신각과 석가불에 찾아서 제사를 지낸 적이 있다는 점에서 암계룡인 모악산과 숫계룡인 계룡산의 권능에 대한 비교가 나온다.
정씨왕국 8백년의 도읍지가 계룡산이라는 참언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후에 특히 널리 퍼졌으며,흥선대원군은 팔도의 모든 정감록을 볼온서적이라고 취급해 금서로 지정했으며,계룡산 출입은 물론 신당과 굿당들도 봉쇄조치를 취했다.며느리인 명성황후가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정쟁에서 승리한 이후,명성황후는 조선왕국을 잇고자 계룡산 연천봉에서 기도를 했고,이듬해인 1874년 순종을 낳았다. 1879년 계룡산의 한 절을 중악단이라 고쳐짓고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했으며,천봉에 있는 등운암의 이름을 정씨를 누른다는 뜻으로 압정사(壓鄭寺)로 고치는 등 많은 노력을 한다.대원군과 다른 행보를 보인 명성황후는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것을 본받아 계룡산신과 계룡산에 있는 부처에게 기도를 드린 것이다.그러나,명성황후의 기도는 들어주지 못한 이유를 상제님은 암계룡인 금산사 미륵불에 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21.생문방의 종착지는 서요동, 둔문방의 상징은 동요동 평사낙안
[그림설명]왼쪽 아래부터 본다면, 숫마이봉에서 발원한 금강은 용담호를 거쳐 무주군 금산군 옥천군을 지나 대청호에 이르고,대청호에서 재출발한 물길은 대전을 돌아 세종시를 거쳐 공주와 부여를 지나 오성산과 군산까지 도달한다.서요동을 상징하는 지역이 진정한 숫계룡이자 서요동인 것을 알 수 있다.옥경대가 건설될 만경강 일대를 본다면,상류에 고산이 존재한다.만경강에 들어설 36만 옥경대는 실제 고씨가 다스린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오성산에 만국영사관이 있고,인근 세종시에 한국의 행정을 담당하는 새종시가 있기 때문에 세종시가 만국영사관의 한국 대표지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계룡산을 중심으로 4개의 지역이 존재하는데,빨간색은 행정구역상의 면적이다.실제 대전을 본다면 주변이 산으로 구성되어 실제 거주면적인 3/4 정도 차지하고 있다.타 도시와 비교해서 본다면 공주보다 적고 세종시나 논산시와 비슷한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거주 면적으로 보면 논산시가 더 크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실제 조화정부가 들어설 전북7군지역은 논산의 7배에 해당하는 크기이며,새만금과 서해로 확장하는 배후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금강의 다른 발원지(지도상의 오른쪽 상단)를 본다면,속리산이 나온다.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만수계곡이 발원지인데,상제님 응기신이 만수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또한,미륵불 신앙의 대중화이자 상제님 탄강의 인연을 만든 진표율사가 창건한 모악산 금산사 이외에 다른 절인 속리산 법주사가 위치해 있다.<진표는 미륵불의 삼회설법의 구원 정신을 받들어 모악산 금산사를 제1도장, 금강산 발연사를 제2도장, 속리산 길상사를 제3도장으로 정하고 용화도장을 열어 미륵존불의 용화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십선업(十善業)을 행하라는 미륵신앙의 기틀을 다지고 천상 도솔천으로 올라가니라. (도전 1:7)>속리산 법주사의 기운을 받고 있는 것이 계룡산과 하류지역인 서요동(군산.오성산)지역이다.속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충주호를 거쳐 경기도 여주 양평을 지나 팔당댐에 이르고 한강까지 이어진다.속리산이 한강과 금강의 발원지임을 알 수 있으며.남조선배의 중심축임을 알 수 있다.
청풍은 충청도 계룡산에서 출발하는 생문방의 기운
속리산은 산의 중심이고.대전은 대한민국 교통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대전의 동쪽에서 발원한 대청호가 청풍의 의미를 그대로 암시하고 있으며,대청의 청(淸)은 청(靑)과 같은 의미이며,동방이자 봄 그리고 생(生)을 의미한다.
청풍명월 금산사(淸風明月 金山寺)에 나오는 앞 구절에 해당하는 청풍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이 기운이 금강을 통해 군산과 오성산인 서요동으로 흘러간다는 것이 중요하며,계룡산 신도안의 새로운 도읍지 기운이 서요동에서 발현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서울은 사문방(死門方)이요, 충청도는 생문방(生門方)이요, 전라도는 둔문방(遁門方)이니 태전으로 내려서야 살리라. (도전 5:406)
위 성구 내용을 본다면,서울은 사문방이고 충청도가 생문방으로 나온다.이는 방위학상의 의미로 후천개벽이 되면 지축이 횡립되어 한반도가 가로축이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를 두고 본다면 서울이 서쪽에 해당하고,충청도가 동쪽에 해당한다.서금인 서울이 사문방이고,동목인 충청도가 생문방인 것이다.또한,향후 남조선인 대전이남 지역이 발전하기 때문에 생문방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생문방이 흐르는 방위와 종착지가 군산지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실제 전라도는 둔문방이자 피난방위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고, 전라도 진정한 태전으로 내려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 논리의 비약이라고 볼 수 있지만,천지공사에서는 나타난 생문방의 의미와 지역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있다.
생문방의 상징과 종착지는 군산
▣ 고후비님이 김제 조종골을 떠나오실 적에, 육임(六任)과 八卦(팔괘)와 십이(十二)며 이십사(二十四)를 싸 가지고 오시다가, 육임과 팔괘는 김제에 오시어 땅에다 묻으시고 땅을 세 번 구르시더라. 또 십이는 이리에 가시어 묻으시며 땅을 세 번 구르시고, 바둑돌과 웇판은 옥구에다 묻게 하시고 종도 열 사람을 데리고 공사를 행하시고 가라사대 "내가 오십토(五十土)를 세 곳에 나누어 놓았느니라. 내가 마음먹고 하는 일은 천지의 귀신도 모르는 일이니라.
십오(十五) 건곤주(乾坤呪)로 호흡공부 하라.사람의 코가 중앙이요 입속의 혀바닥이 조화본이며,귀는 들으라고 마련한 것 눈은 보라고 마련한 것(이다).입은 사문(死門)인 연고로 함부로 말하면 못쓰며, 항문은 생문(生門)이라,넉동배기 윷놀이에 빼는 곳이 생문이니라." 하시니라. (선도신정경)
위 성구 내용으로 본다면,<바둑돌과 웇판은 옥구에다 묻게 하시고>에서 나오는 오선위기 기운은 옥구에 존재한다.옥구는 군산 인근지역이므로 군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항문은 생문(生門)이라,넉동배기 윷놀이에 빼는 곳이 생문이니라.>에서 본다면,윷판을 묻은 군산(옥구)이 생문이자 항문으로 보아야 한다.군산이 항문으로 보는 이유는 다른 천지공사에서도 군산을 항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조선이자는 지명을 어체인 물고기에 비유하면서 설명한 적이 있다.
나주 패운의 올바른 해석과 ‘작은 한양’
▣ 말씀하시기를, 정읍 군창 나주에서 먼저 일어나노라.제자가 여쭈기를, 대병이 어째서 호남의 세 군에서 먼저 일어나나이까?말씀하시기를, 나주는 망하는 운이요, 군창은 어복이요, 정읍은 구세천명이 이 곳에서 때를 기다리노라.(이중성 천지개벽경)
▣말씀하시기를 “처음 발병하는 곳은 조선이니라. 이는 병겁에서 살리는 구원의 도(道)가 조선에 있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세간에 ‘광라지지(光羅之地)를 밟지 못하리라.’ 하는 말이 있사온데 무슨 연고입니까?” 하니 “광라(光羅)의 땅은 패운(敗運)에 들어서 있느니라.” 하시니라.(도전 7:40)
<군창은 어복이요>라는 성구 내용에서 본다면, 군산을 의미하는 군창이 어복인 고기의 창자로 비유햇다.창자는 사람으로 본다면 항문(배설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주는 망하는 운인 패운(敗運)이 들어서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는데,이를 옮긴 이가 많은 한자 중에 패(敗)를 골랐다고 본다.그러나 열고 닫는 개폐(開閉)를 뜻하는 폐일수 있다고 본다.지운상으로 남조선의 마지막 땅 끝에 해당하기 때문이다.나주가 운이 닫히기 때문에 어복을 상징하는 군산이 병겁발생(썩는다고)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화순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절이다.수많은 창건 설화가 내려오는데,풍수로 보는 내용을 소개하자면,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보고 배모양과 같다고 보았으며,우리나라 지형을 배로 비유하면서 태백산과 금강산은 뱃머리이고,배의 꼬리는 월출산과 한라산이고,부안의 변산은 배의 진행방향을 조절하는 키이고,지리산은 삿대로 판단했다.이에 뱃구레에 해당하는 곳인 화순에 무게가 실려야 하므로 천불천탑을 쌓았다고 한다.이 내용을 토대로 본다면,뱃구레가 닫힌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뱃구레는 사람이나 짐승의 배안을 말하는 복부를 의미하기도 한다.즉 군산과 나주가 사람으로 보면 복부이고,배로 보면 배의 격식구조 안으로 이해하면 된다.
<‘광라지지(光羅之地)를 밟지 못하리라.’>는 예언서에 나온 애기로 추론되며, 괴질의 기운이 상서로운 나주에 밟지 못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점이며,<“광라(光羅)의 땅은 패운(敗運)에 들어서 있느니라.”>에서 본다면,실패하는 의미의 패(敗)가 아닌 닫히는 폐(閉)의 폐운으로 해석해야 한다. 호남의 운이 거기까지 미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나주는 예로부터 한양의 구조와 닮아 ‘작은 한양’이라는 별칭을 받은 지역이기도 하다.
▣ 어자는 생선이라 생선복중 염장이라 생문방을 들어가니 중알일성 분명하다( 초당에 춘몽- 용화전경)
위 내용에서 본다면,생선의 어복에 들어가는 것을 생문방으로 표현한 것이다.즉 어복인 군산을 의미하며, 군산 인근에 오성산이 있고 장상기지인 옥구가 있기 때문이다.선도신정경에는 <옥구는 닷줄 장상지지요>라면서 장상신이 결집하는 지운이 응기한 곳으로 지목하고 있다.(어복은 배로 보면 노를 저을 수 있는 도사공 자리이기 때문이다)
▣또 어느날 공사 후에 고후비께서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오성산에는 오성이 있고 오성산에는 서요동이 있고 오성산에는 사옥재가 있지 아니하더냐.이곳이 오성산(五聖山)이니 오선위기(五仙圍碁) 도수를 끌어다가 이 곳에 붙여 쓰니라.(선도신정경)
▣ 하루는 태모님께서 옥구 선연리 삼불산(三佛山)에서 장상(將相) 집결 공사를 보시며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사람도 참석해야 할 것 아니냐. 장상신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삼불산 아래에 송촌(松村)이 있고, 송촌 건너편에 선인옥녀봉(仙人玉女峯)이 있으니 선인옥녀봉이 자하도, 삼불산의 운수로다. 삼산(三山)의 불로초가 이 아니냐. 상등, 중등, 하등이 오십토 중앙이요 도읍을 다시 옮겨 천자국(天子國)이 이 아니냐. 천자신이 월명산(月明山) 천하봉에 임하였느니라. (도전 11:379)
<오성산에는 오성이 있고 오성산에는 서요동이 있고>에서 본다면 오성산에 오성기운이 존재하고,서요동으로 불리웠기 때문에,이곳이 도읍지의 서쪽이 된다는 의미이다.<옥구 선연리 삼불산(三佛山)에서 장상(將相) 집결 공사>에서 본다면,장상신의 기운이 응기했기 때문에 36만 옥경대가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도읍을 다시 옮겨 천자국(天子國)이 이 아니냐.>에서 본다면 도읍지를 의미하는 기운을 응기시켰다는 점에서 계룡산 신도안 기운을 여기에 발현시킨 것이다.<천자신이 월명산(月明山) 천하봉에 임하였느니라.>에서 본다면,정도령에 해당하는 황극제의 기운이 군산에 있는 월명산에 임했기 때문에 새로운 도읍지이자 조화정부의 터전이 된다.
명월은 서요동 옥구에서 떠 오르는 고천황후를 의미
▣ 어느 그믐날 임피 이서방의 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게 되었더니, 그집 주인이 들어오며 가로대 "사방이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하며, "달빛이 있으면 오직이나 좋을까." 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달빛이 있으면 좋겠느냐."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대 "참으로 좋겠나이다." 하니, "그러면 달 보러 가세." 하시며 주인을 데리고 오성산(五聖山)에 오르시여 동쪽을 바라보라 하시거늘, 이르시는 대로 동쪽을 바라보니 과연 둥근달이 환하여 참으로 휘황찬란하더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오성산(五聖山)에 오르시여~>에서 본다면 둥근 달이 떠 오른다는 내용이 나온다.밤이라는 것은 후천을 상징하며,달은 고수부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오성산이 바로 명월을 상징하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 어느날 신정공사에 고후비님께서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무신(戊申) 기유(己酉)에 천지가 개로하니 무우 뽑다 들킨격 되느니라 옥구는 닷줄 장상지지요 임피는 흑운명월(黑雲明月) 도수니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상제께서 섣달 그믐날 저녁에 임피에서 달 뜨게 하셨음을 알라."(선도신정경)
<임피는 흑운명월(黑雲明月) 도수니라.>에서 본다면,검은 구름속에 밝은 달을 암시하고 있으며,명월이 의미하는 지명이 임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임피(臨陂)의 피(陂)는 제방 옆에 파도를 의미하고 있다.즉 물결을 피한다는 의미도 있지만,물결이 끝나는 제방이므로 육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조선배의 착륙지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남조선배 상륙을 알리는 배말뚝 공사를 오성산에 보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후천의 도읍지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천자신이 월명산(月明山) 천하봉에 임하였느니라. 도전 11:379>에서 본다면 월명산의 이름이 밝은 달이며,군산 월명공원의 월명산이외에도 군산의 북쪽 금강을 넘어 서천군 비인면에도 월명산이 있고,부여와 보령의 경계인 보령시 미산면에도 월명산이 있다.군산 인근에만 3개의 월명산이 집중적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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