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 대순전경과 서간체형식의 비록32장, 천심경 소장_여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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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9.♡.137.16) 작성일13-12-09 14:24 조회9,045회 댓글0건본문
여의주작성일13-06-27 22:13조회489회 댓글47건
<육필 대순전경>
고불선원이 소유한 유일 본(단 한권 밖에 없는) 육필 대순전경.
[출처] 육필 대순전경과 서간체형식의 비록32장, 천심경 소장|작성자 석암
<육필 대순전경 표지>
1949년 1월11일 증산교의 17개 교단 대표들이 모여 증산교 교파간의 연합조직운동의 종교단체 '증산교단 통정원'을 설립하기 위해 유동열선생의 주도하에 모임을 가졌다.
'증산교단 통정원'의 통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참모총장을 지냈으며, 8ㆍ15광복 후에는 미 군정청의 통위부장을 지낸 유동열선생이 맡았고 부통교는 '대순전경'의 저자인 이상호가 발탁되었다.
그리고 '증산교단 통정원'은 증산교단임을 선언하고 교의체계, 신앙체계, 증산규약을 채택하기 위해 기존에 완성되어 있던 육필 '대순전경'에 표지를 입혀 '증산교단 통정원'의 단체신앙체계 경전으로 삼았다.
육필 '대순전경’은 총 13장 489절 252면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상호의 서(序), 이정립의 체(替), 보주(補註), 목차, 본문, 그리고 책 말미에는 잡가 등 6편 12면, 증산대선생 략사( 畧史)문답 4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겉 표지에는 단기 4282년(1949년) 7월로 표기되어 있고, 경의 끝부분에는 단기4281년 무자년(1948년) 5월 중순에 시작하여 6월20일 완기 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옆을 보면 강증산선생께서 선화한 1년 후 인 1910년 7월26일 전라남도 장성에 거주하는 '이양섭'이 완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대순전경 서 >
육필 ‘대순전경’ 앞부분에 있는 이상호의 서(序)와 이정립의 체(替) 끝부분에는 기사(己巳,1929)년에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초판본이 출판된 1929년과 동일하다.
<대순전경 체(찬)>
반면1929년에 최초로 만들어진 인쇄본 대순전경은 총 13장 499절 250면으로 되어 있고 책의 첫 머리에는 증산의 필적 5점을 싣고 이상호의 서(序), 이정립의 찬(贊), 보주(補註), 목차, 본문 그리고 책 말미에는 출판 할 때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궁을가>
두 책을 비교해 보면 인쇄본 대순전경이 10절 더 많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인쇄본에는 제3장 43, 80절, 제6장 45, 78절, 제9장 15, 17절, 제10장 7, 11절, 제12장 4, 12절 등 총 ‘열 개의 절’이 ‘절’만 표시되어 내용이 없는 공란으로 되어있고, ’ 육필본’에서는 공란 없이 차례대로 적혀있기 때문이며 상이한 내용은 없다.
그리고 육필본 경이 끝난 부분에서 부터 ‘처세가’ ‘서전서문’ ‘지지가’ ‘궁을가’ ‘상세가’ ‘증산대선생략사문답’ ‘제세신약가’등이 차례로 담겨져 있는데 이 중 강증산에게 사상적 영향을 준 ‘정역(正易)'을 저술한 ‘김일부’가 쓴 ‘궁월가’ 는 기존 궁월가와 내용이 상이하다.
또 ‘증산대선생략사문답’은 강증산이 태어난 시기부터 그의 사상까지 문답형식으로 적혀있어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쇄본 대순전경에는 이런 내용들이 없다.
그리고 초판 인쇄본에는 이정립이 쓴 ‘찬(贊)’이 육필본에서는 ‘찬(贊)’이 아니고 ‘체(대체 할替)’로 되어 있고 글쓴이도 이정립(李正立)이 아닌 그의 본명 이성영(李成英)으로 표기되어있다.
육필’대순전경’의 끝 부분, 책이 완성된 날짜를 기록한 곳에는 누가 훼손 시킨 것인지 모르는 '千九百 十年' 의 각 앞부분에 '一 '자와 '五'자를 넣어 '서기 일천구백 오십. . .' 이라는 낙서를 한 흔적이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육필 ‘대순전경'은 1910년에 육필로 쓰여졌고, 1948년 통정원의 전경으로 쓰기 위해 1929년 초판 당시의 서(序) 부분과 찬(贊)부분을 넣어 책의 모양을 갖춰 완성 시켜 준비하였으며, 1949년에 표지를 입힌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이상호는 전국을 다니며 강증산의 제자 및 지인들로부터 얻은 강증산에 대한 모든 정보를 노트에 기록하였는데 그 수집본(노트)은 세상에 내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호는 수집본을 항상 그의 방 머리맡에 있는 나무 궤에 보관하면서 필요한 시기에 해당되는 부분만을 소수의 신도들에게 공개하였다고 한다. 이상호가 죽기 전날 밤 그가 거주하는 방에 불을 너무 많이 지펴 수집본을 보관하고 있던 나무 궤 밑에 불이 나 그 궤와 함께 수집본은 모두 타버렸고 그 궤 위에 있던 한 권의 책은 가까스로 건졌다고 한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1929년 인쇄된 초판 대순전경에 없는 부분들이 기록되어 있는 육필 ‘대순전경’은 이상호의 지시로 이정립 및 소수의 교인들이 참여 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육필본’ 으로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한 권이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육필 대순전경'을 연구 중에 있다.
<육필 ‘대순전경’과 함께 보관된 서간체 형식의 비록(祕錄) 32장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강증산이 직접 쓴것으로 추정되는 천심경 1장>
<비록 32장 중 1장>
증산교는 일제강점기에 100여개의 교파와 수백만의 신도를 헤아릴 정도로 크게 일어났다. 증산교의 한 분파인 보천교는 간부 55만7,700명, 신자 600만명이라고 선전 할 만큼 활발한 종교활동을 하여 항간에 보천교의 재산이 당시 우리나라 전 국토의 10분의 1을 살 수 있는 정도라고 알려 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1938년 조선총독부는 교세가 확장되자 우려한 나머지 '유사종교 해산령'을 내렸으며 이에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총독부의 강경한 정책과 탄압은 증산교 각 교파의 많은 신도들이 투옥되어 옥사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때부터 증산교는 지하에서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1938년부터1945년 광복이 되기 전까지의 증산교 활동 기록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남아있지 않은데, 증산교의 암흑기인 1938년부터 해방 전까지의 증산교 지하조직 활동과 한국전쟁시기인 1950년대 활동이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서간체형식 32장의 문건이 육필 ‘대순전경’과 함께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하에 세상에 나올 준비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하고 있다.
특히 증산 강일순이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천심경(天心經)' 1장은 증산계열의 수 십개의 분파와 그 외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천심경>
육필 ‘대순전경’과 함께 발견된 ‘천심경’ 1장 그리고 ‘비록 32장’의 소유여부에 따라 강증산
사상과 관련된 수 십 개의 교파인 증산도, 대순진리회, 원불교 등이 서로 주장하는 정통성 부
분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육필 ‘대순전경’과 ‘천심경’ 그리고 ‘비록 32장’
이 소장된 곳이 강증산 계열과 이와 관련된 신흥종교들의 성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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