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도전에 나타나는 조철제 도주 와 상제님 성골도난_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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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4.♡.206.36) 작성일13-12-09 17:27 조회7,390회 댓글0건본문
광장 **도 도전에 나타나는 조철제 도주 와 상제님 성골도난
노들작성일13-07-20 15:21조회397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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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辛酉 : 道紀 51, 1921)년 삼월 삼짇날에 이르러 조철제가 ‘상제님의 성골(聖骨)을 모시고 수도하면 큰 기운이 붙어 도통하고 교단이 크게 번창한다.’는 소문에 현혹되어 그의 심복 권태로(權泰魯), 손진방(孫進邦) 등 장정 여덟 사람을 시켜 밤을 타서 구릿골 장탯날에 모신 상제님 성골을 도굴하니라.
이 때 형렬은 서울에 가고 그 아내 김호연이 딸을 출산한 지 갓 사흘이 되어 사랑방에 누워 있는데
이 때 형렬은 서울에 가고 그 아내 김호연이 딸을 출산한 지 갓 사흘이 되어 사랑방에 누워 있는데
고요한 밤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번갯불이 방안으로 들어오며 몸을 휘감는지라
호연이 놀라 일어나 정신을 차리니 “내 몸을 도둑질해 가고 있는데 뭣들 하고 자빠졌느냐!” 하는 상제님 성령의 불호령이 떨어지거늘 방문을 열고 형렬의 큰아들 찬문을 불러 이르기를 “불칼이 방안으로 들어와 대니 어쩐 일인지 선생님의 묘소에 좀 가 보고 오소.” 하므로 찬문이 서둘러 장탯날에 가 보니 과연 묘소가 다 파헤쳐져 있고 도굴범들은 횃불을 들고 멀리 도망하는 중이라 쫓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니라.
이 때 서울에 있는 형렬에게도 “내 몸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너희들은 잠만 자고 있느냐!” 하시는 상제님의 호령이 들리거늘
형렬이 즉시 김덕찬(金德燦)과 몇 명을 데리고 출발하여 이튿날 동이 틀 무렵에 집에 당도하니라.
형렬이 대문에 들어서며 다급한 목소리로 “어젯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니
호연이 간밤에 있었던 일을 말하매 형렬이 곧장 묘소로 달려가 구덩이를 보더니 “이는 조철제의 짓이라.” 하니라.(道典 10:138)
김형렬이 조철제의 성골 도굴 만행을 김제 경찰서에 고발하니
경찰은 전라북도 각 경찰서에 통지하여 수사를 진행하되 이 사건을 계기로 증산계(甑山系) 교단이 와해되기를 바라며 소극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뿐이더라.
한편 철제는 기미년 여름에 대흥리 도장에서 훔쳐 온 궤(櫃)를 숨겨 두고 상제님의 친동생 선돌부인을 이용하여 ‘상제님의 의자(義子)로 유명(遺命)을 얻어 교통(敎統)을 받았다.’며 교단 창립을 꾀하더니 이어 성골을 도굴하여 통사동 영모재 골방에 감춰 두고 ‘모월 모일에 상제님의 뼈에 살이 붙어 나와 상제님이 다시 출세하신다.’고 하며 신도들의 금전을 갈취하니라.
그러나 약속한 날이 되어도 상제님께서 오시지 않으매 다시 상제님 성탄절인 9월 19일로 연기하였으나 역시 허사가 되니라.(道典 10:139)
조철제의 허무맹랑한 만행을 탐지한 문공신은 김정우(金定雨)로 하여금 철제를 거짓 추종하여 신임을 받게 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니라.
하루는 철제를 따르던 경상도 사람 둘이 공신에게 와서 공부를 청하매 공신이 흔쾌히 받아들여 공부를 시키거늘
그중 한 명이 느닷없이 피를 쏟더니 혼수상태에 이른지라 공신이 정신을 차리게 하고 그 연유를 물으니 거짓으로 남의 집에서 돈을 가져와 신벌을 받은 것이더라. 공신이 그들을 다시 돌려보내니 그들이 그 동안 베풀어 준 공신의 은혜에 감복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조철제에게 돌아가니라.
임술(壬戌 : 道紀 52, 1922)년 정월 23일에 그 두 사람이 다시 공신을 찾아와 “조철제가 상제님의 성골을 도굴하여 영모재에 숨겨 두었는데 내일 새벽에 북간도로 모셔 간다.” 하거늘
일찍이 공신이 고부경찰서에 갇혀 있을 때 ‘공신아, 내 몸이 조선을 떠나면 안 되느니라.’ 하신 상제님 말씀이 불현듯 되살아나는지라
법적 절차를 밟아 성체를 모셔오려고 하니, 공신의 제자 양주선, 민영두, 박노규, 이기선 등이 서둘러 영모재를 습격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매 20여 명을 거느리고 석 자가 넘는 각목을 챙겨 통사동으로 찾아가니라.
영모재에 도착하여 문지기 넷을 때려눕히고 방으로 들어가니 조철제는 이미 도망하고 피우던 담뱃불이 채 꺼지지 않았거늘
공신이 이중벽 속에 숨겨 둔 성골을 찾아 집으로 모시고 와 보니 뜻하지 않게 현금 만여 원이 들어 있더라.
공신이 현금은 경찰서에 가져다 주고 찾아온 성골을 천장 위에 은밀히 모시다가 운산리 신경수의 집으로 옮겨 용마루 속에 모시거늘
이 과정에서 성골 가운데 왼팔 뼈가 없음을 확인한 공신이 정우 등으로 하여금 다시 철제를 추격하게 하여 서대전역에서 그 일행을 붙잡으니 철제가 왼팔 뼈를 심복 김윤진에게 주어 도망치게 하매 정우 등은 철제가 가진 현금을 빼앗으니라.
이에 철제가 대전 경찰서에 정우 일행을 강도로 고소하매 경찰이 철제와 정우 일행을 취조하니 성골 도굴 사실이 모두 드러나는지라
공신과 장남 광옥(光玉)을 비롯한 정우와 철제 등 20여 명이 검거되어 공신은 7년 징역에 처해지고 철제는 되찾은 돈으로 뇌물을 주어 곧 풀려나니라. 이 때 수산도 독립 자금 후원의 죄로 공신과 함께 대전 형무소에서 7년을 복역하니라.( 道典 10:140)
3월에 이르러 성골이 정읍 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성모 권씨께서 대로하시어
3월에 이르러 성골이 정읍 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성모 권씨께서 대로하시어
경찰서에 가서 “내 아들 유골을 내놓으라.” 하며 고함을 치시니 ....
계해(癸亥 : 道紀 53, 1923)년 삼월삼짇날 경찰에서는 성모님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성골을 보천교(普天敎)로 인도하니 보천교에서는 정읍군 입암면 신면리(新綿里) 진등 마을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여 안치하고 묘각(墓閣)을 세워 모시니라.
계해(癸亥 : 道紀 53, 1923)년 삼월삼짇날 경찰에서는 성모님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성골을 보천교(普天敎)로 인도하니 보천교에서는 정읍군 입암면 신면리(新綿里) 진등 마을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여 안치하고 묘각(墓閣)을 세워 모시니라.
이에 철제가 다시 100여 명을 동원하여 진등 마을 빈소에 모셔 둔 성골을 도굴해 가거늘
보천교에서 200여 명이 도굴범들을 추격하여 태인과 정읍 중간 지점에서 다시 되찾아 오니라.
정묘(丁卯 : 道紀 57, 1927)년 가을에 철제가 상제님의 친딸 이순(二順)을 앞세워 보천교를 상대로 성골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니
경석이 패소(敗訴)와 성골 도굴을 우려하여 차윤경(車輪京), 김정곤(金正坤) 등으로 하여금 대흥리 비룡산 중턱에 성골을 평장(平葬)하게 하고 ......빈소에는 김정곤의 머슴 뼈를 대신 묻어 두니라. ( 道典 10:141)
무진(戊辰 : 道紀 58, 1928)년 정월 초사흗날에 경석이 이씨 부인의 허령 체험에 현혹되어 신로(信路)를 변경하더니
무진(戊辰 : 道紀 58, 1928)년 정월 초사흗날에 경석이 이씨 부인의 허령 체험에 현혹되어 신로(信路)를 변경하더니
차천자(車天子)를 참칭(僭稱)하며 ‘상제님의 체백(體魄)을 없애리라.’ 하고
윤경으로 하여금 비룡산에 암장한 옥골을 파 오게 하니 윤경이 다른 유골을 갖다 주니라.
조종리 도장 성도들은 경석이 상제님의 성골을 가지고 불측한 짓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크게 분개하여
보천교와 투쟁할 각오를 하고 성골을 모셔 오고자 상여(喪輿)를 만들어 출발하려 하니
태모님께서 만류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만들 두어라. 누구의 뼈다귀인지 아느냐.” 하시므로 할 수 없이 그만두니라.
그 뒤 또 다시 철제가 진등 마을 빈소에 묻어 둔 머슴의 뼈를 상제님의 성골로 알고 도굴해 가거늘
상제님의 성골이 온갖 수난을 당하더니........... 마침내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니라. ( 道典 1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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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올려주신 신비전님의 동영상 덕분으로 보다 확실한 상제님 체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상제님의 성골이 온갖 수난을 당하더니........... 마침내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니라. ( 道典 1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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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올려주신 신비전님의 동영상 덕분으로 보다 확실한 상제님 체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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