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김자현 종도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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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우신조 (39.♡.46.218) 작성일15-10-07 03:20 조회6,749회 댓글2건본문
김자현(金自賢)
■제자의 생애1
1. 본명(족보) 언회(彦會)
2. 본관 안동(安東)
3. 부(父) 김원장(金元長)과 모(母) 박씨(朴氏)의 독자
4. 농업5. 갑술(甲戌 : 4, 1874)년 4월 9일,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金堤郡 金山面 淸道里)에서 출생.
정묘(丁卯 : 57, 1927)년 11월 10일,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金堤郡 金山面 淸道里)에서 53세로 작고.
6. 청도리에 거주하는 안동 김씨의 종가(宗家)집 장손(長孫)이며
김형렬 제자와는 사종형제(四從兄弟) 이다. 김자현 제자가 15세 연하이다.
■입도
1. 임인(壬寅 : 32, 1902)년 4월, 29세.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金堤郡 金山面 淸道里) 제비창골 안동김씨재실(安東金氏齋室)
2. 김형렬 제자의 인도
■천지공사에서의 역할과 수종
음자를 가려 떼는 공사 외, 여러 공사에 참여.
■생애2
상제님을 따르기 전에는 농사를 지었으며 학식이 많은 선비였다고 한다.
다리에 습종이 나서 고생하고 있을 때 김형렬 제자의 소개로 상제님을
만나 보니 창출 한 되 캐고 엿 다섯 가래를 사서 찧어 붙이라고 하셨는데
막내딸이 그것을 좀 떼어먹었다. 그래서 떼어먹은 만큼 습종이 덜 나았다고 한다.
"陰"자를 가려 떼는 공사와 청국 공사에 참여하셨으며 김자현 제자의 딸이 시두
손님에 걸려 있을 때 상제님께서 그 병을 치료해 주셨다.
상제님께서 어천 하시기 사흘 전에 김형렬 제자와 김자현, 그리고
다른 제자 한 분을 부르시더니 '내가 죽어도 믿음을 변치 않겠느냐'고
세 번 다짐을 받으셨다.
상제님 어천 후에 집안 살림이 바람이 불면 지붕에 실같이 엮어서 덮어놓은
짚이 모두 날아갈 정도로 어려웠다.
사람들의 병을 많이 고쳐 주며 포교를 하러 다닐 때 금산사 미륵전으로
수백 명이 모여서 치성을 드리기도 했는데, 그것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오해를 사서
원평에서 잡혀 전주 형무소에 들어갔었으며, 한 번은 두승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고부 경무청에 잡혀 들어가 모진 고생을 하였다.
김자현 제자가 작고하기 전에 이상호씨가 상제님 성적을 들려 달라고 수차례 간청을
했으나 이상호의 속마음이 야심이 많고 다른판을 꾸미려고 하는 기색이 보여서
얘기를 전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김형렬 제자의 손자 김현식 씨와 가족들이 지금도전하는 말이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호씨를 만나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하며 만날 장소인 주막에
가서 이상호씨에게 '내가 서울 남대문에 가서 무슨 일을 보고와야 될 텐데
음력 10월 17일에 출발해서 5일 후 21일에 내려오려고 하니 돈이 있으면
1원만 달라.'고 해서 빌려 가지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그렇게 돌아와서 며느리에게 서울을 갈 테니 의복을 지어 놓으라하고
가족을 불러 태어난 해의 띠에 따라 부적을 그리고, 이름을 쓰고,
점을 찍어 불사르고 나서 10월 17일 아침 세수를 하다가 숨을 거뒀다 한다.
이 때 하늘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어나고 소나기가 쏟아 졌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을 떠나자 이상호와 몇 명이 와서 5일 만에 오신다고 했으니
5일 장을 하라고 하며 양식을 대서 집에서는 3일장도 못할 형편이었으나
6일 만에 출상을 했다.
순천 장기동은 증산 상제님 어천 후 김자현 제자에게 상제님 말씀을 전해 듣고
구릿골에 와서 살았다. 그 때 김자현 제자의 막내딸이 상제님 신앙을 잘해서
'사돈을 삼자'고하여 자기동의 며느리가 되었고 장기동의 딸은 김형렬 제자의
며느리가 되었다. 슬하에 2남(泰振, 泰俊) 1녀를 두었다.
■제자의 생애1
1. 본명(족보) 언회(彦會)
2. 본관 안동(安東)
3. 부(父) 김원장(金元長)과 모(母) 박씨(朴氏)의 독자
4. 농업5. 갑술(甲戌 : 4, 1874)년 4월 9일,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金堤郡 金山面 淸道里)에서 출생.
정묘(丁卯 : 57, 1927)년 11월 10일,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金堤郡 金山面 淸道里)에서 53세로 작고.
6. 청도리에 거주하는 안동 김씨의 종가(宗家)집 장손(長孫)이며
김형렬 제자와는 사종형제(四從兄弟) 이다. 김자현 제자가 15세 연하이다.
■입도
1. 임인(壬寅 : 32, 1902)년 4월, 29세.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金堤郡 金山面 淸道里) 제비창골 안동김씨재실(安東金氏齋室)
2. 김형렬 제자의 인도
■천지공사에서의 역할과 수종
음자를 가려 떼는 공사 외, 여러 공사에 참여.
■생애2
상제님을 따르기 전에는 농사를 지었으며 학식이 많은 선비였다고 한다.
다리에 습종이 나서 고생하고 있을 때 김형렬 제자의 소개로 상제님을
만나 보니 창출 한 되 캐고 엿 다섯 가래를 사서 찧어 붙이라고 하셨는데
막내딸이 그것을 좀 떼어먹었다. 그래서 떼어먹은 만큼 습종이 덜 나았다고 한다.
"陰"자를 가려 떼는 공사와 청국 공사에 참여하셨으며 김자현 제자의 딸이 시두
손님에 걸려 있을 때 상제님께서 그 병을 치료해 주셨다.
상제님께서 어천 하시기 사흘 전에 김형렬 제자와 김자현, 그리고
다른 제자 한 분을 부르시더니 '내가 죽어도 믿음을 변치 않겠느냐'고
세 번 다짐을 받으셨다.
상제님 어천 후에 집안 살림이 바람이 불면 지붕에 실같이 엮어서 덮어놓은
짚이 모두 날아갈 정도로 어려웠다.
사람들의 병을 많이 고쳐 주며 포교를 하러 다닐 때 금산사 미륵전으로
수백 명이 모여서 치성을 드리기도 했는데, 그것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오해를 사서
원평에서 잡혀 전주 형무소에 들어갔었으며, 한 번은 두승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고부 경무청에 잡혀 들어가 모진 고생을 하였다.
김자현 제자가 작고하기 전에 이상호씨가 상제님 성적을 들려 달라고 수차례 간청을
했으나 이상호의 속마음이 야심이 많고 다른판을 꾸미려고 하는 기색이 보여서
얘기를 전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김형렬 제자의 손자 김현식 씨와 가족들이 지금도전하는 말이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호씨를 만나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하며 만날 장소인 주막에
가서 이상호씨에게 '내가 서울 남대문에 가서 무슨 일을 보고와야 될 텐데
음력 10월 17일에 출발해서 5일 후 21일에 내려오려고 하니 돈이 있으면
1원만 달라.'고 해서 빌려 가지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그렇게 돌아와서 며느리에게 서울을 갈 테니 의복을 지어 놓으라하고
가족을 불러 태어난 해의 띠에 따라 부적을 그리고, 이름을 쓰고,
점을 찍어 불사르고 나서 10월 17일 아침 세수를 하다가 숨을 거뒀다 한다.
이 때 하늘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어나고 소나기가 쏟아 졌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을 떠나자 이상호와 몇 명이 와서 5일 만에 오신다고 했으니
5일 장을 하라고 하며 양식을 대서 집에서는 3일장도 못할 형편이었으나
6일 만에 출상을 했다.
순천 장기동은 증산 상제님 어천 후 김자현 제자에게 상제님 말씀을 전해 듣고
구릿골에 와서 살았다. 그 때 김자현 제자의 막내딸이 상제님 신앙을 잘해서
'사돈을 삼자'고하여 자기동의 며느리가 되었고 장기동의 딸은 김형렬 제자의
며느리가 되었다. 슬하에 2남(泰振, 泰俊) 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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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조화봉님의 댓글
조화봉 아이피 182.♡.39.104 작성일
53세를 사셨네요.
1927년에 돌아가셨다면 고수부님 천지공사 시작한지 한해 후에 돌아가신게 되는군요.
천우신조님의 댓글
천우신조 아이피 122.♡.146.230 작성일
긴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환절기 몸 건강하세요.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