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통인패(2)_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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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9.♡.137.16) 작성일13-12-09 11:40 조회8,403회 댓글0건본문
의통인패(2)
빗자루작성일13-06-02 13:54조회272회 댓글7건
의통인패(1)에 이어서...
같은 일례로, 김형렬의 집안에서 나온 동곡비서의 내용도 그러합니다. 동곡비서 원본에는 끝판에 '김씨'가 나온다고 되어있다고 하는데, 대순***나 대전 모종단과 같은 단체들은 동곡비서가 김형렬이나 그 후손들이 사욕때문에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김씨' 부분을 'O씨' 또는 '돍씨'로 바꿔놓고는 자신들 교주의 성씨로 생각되어지도록 하고 있지요. 차라리 '박씨' '안씨' 처럼 그 교주 성씨를 적으면 될 것을... 그러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동곡비서의 원본에 빗대어 자신들의 왜곡이 드러나므로 교묘히 'O씨' 또는 '돍씨'라고 적고 교주의 성씨가 떠오르게끔 하고 있지요.
이 또한 김형렬이 천자(天子)가 되고자 하는 탐욕때문에 '김씨'라고 조작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전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증산의 법제자들이 직접 왜곡 또는 조작했다고 의심하면, 경전 자체의 신뢰 즉 증산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숙고해야하는 큰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증산께서도 이렇게 조작하는 자들을 당신의 법제자로 삼아 큰아들로 삼고, 만국대장에 임명하고... 등등 천지공사를 하셨다면, 그 분 또한 예수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증산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것까지 염두해두어 난법을 낸 분이기에 적어도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직계 제자들은 그런 하천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증산께서 제자들 중에서 당신을 배신할 차경석과 안내성... 등등을 염려하신 것은 경전에 나오지요. 그 분께서는 당신의 법제자들을 두루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박공우라는 사람이 증산의 말씀을 조작할 정도의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군요. 저는 박공우를 믿고 싶습니다. 박공우의 인간성을 부정하면, 이는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못한 증산의 안목을 부정하는 꼴이니까요. 적어도 경전에 나오는 말씀이 어려워 그 해석이 틀릴 수는 있어도 경전에 나오는 문구 자체를 조작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경전이 불경이나 예수경처럼 오래된 것도 아니고, 100년도 채 되지않은 것이기에 분명히 기존 종교의 경전들보다는 신뢰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대순***의 경전이나 모종단의 '도전'처럼 교주의 입장에 맞추어 왜곡된 부분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순전경 초판본이나 천지개벽경, 동곡비서처럼 오롯히 증산의 말씀만을 전하는 경전은 그래도 왜곡이 덜하다고 여기는 것이고, 적어도 없는 말을 지어내는 조작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저의 전제 조건은 그러한 신념하에 믿는 것입니다.
이제 천지개벽경에 전해지는 의통인패 제작법은 증산께서 박공우에게 전했다는 믿음하에서 이 의통인패를 다시금 바라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증산관련 단체에서도 의통인패를 완전히 믿거나 또는 완전히 부정하는 글만 있었지 의통인패를 분석한 글은 없더군요. 또 그런 판 안의 단체 안에서 의통인패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바로 난법으로 낙인찍혀서 고생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판 밖이 좋은가 봅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제 의견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천지개벽경에... (인암은 박공우의 호, 월곡은 차경석의 호)
[ 기유년 여름에 대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시며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천지대공사를 보시니, 설법하시고 행법하시사 신명에게 칙명을 내리시니라. 제자들이 명에따라 모두 물러가니,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너는 나에게 오라.
월곡이 생각하기를 반드시 명령이 있으리라 하여 몰래 마루 옆에 들어오니, 인암이 알지 못하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닥쳐올 형세가 병겁이 세상을 덮칠 것인데, 너는 어떻게 구하려느냐?
인암이 말씀드리기를,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면 제자가 어떻게 구할 수 있사오리까?
말씀하시기를, 종이를 자르되 가로는 짧고 세로는 길게하고, 나무에 태을주를 새겨 경명주사를 발라서 찍어서 입교하는 사람마다 주라. 병이 침범치 못하리니, 이것이 녹표니라.
월곡이 오래 머무르다가 들킬 것을 두려워하여 여기까지 듣고 물러가니, 인암은 알지 못하더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네 입에 병을 매달아 가벼우니, 곤륜산을 매달아라. 나는 천하사를 하러 몇일 안에 떠나노라.
인암이 아뢰기를, 하루를 모시지 못하면 하루가 무정하오니, 제자는 함께 가도록 허락하소서.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네가 갈 곳이 아니니라. 여기 있으면서 천하사를 하면 불편함이 많은데, 그 곳에 가서 하면 참으로 쉬우니라. 그곳에서 내가 일을 크게 벌리거든 너는 천하 모든 나라의 움직임을 살펴, 내가 천하사를 이와같이 하는 줄을 알도록 하라. 내가 미처 돌아오기 전에 괴질이 크게 터지면 마치 홍수가 밀리듯 하여 인간 세상을 덮치리니, 천하 모든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살아날 사람이 드무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내 덕을 펼칠 사람이 무진년 동지에 머리를 들리니, 이 사람이 세상을 구할 사람이니라. 너는 해의 차례(간지)가 무진년 봄이 되거든, 움막을 치더라도 원평에 와서 살아라. 너를 찾아와 서로 도울 사람이 있으리라.
인암이 여쭈기를, 이때를 당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무진년 동지에 기두하는 사람이나이까?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 밑에있는 신도가 재물로 너를 도와 나의 명령을 시행하노라.
인암이 여쭈기를, 아는 사람이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처음 만나는 생소한 사람이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이때가 되어 재력을 얻거든 복숭아나무 동쪽 가지 아래 자리를 마련하고, 제수를 정성껏 준비하고 몸을 씻고 계를 지켜 나에게 치성을 올리고, 복숭아 나무 동쪽 가지를 자르라. 생각하기에 급하다면 불에다 말려 서도 또한 무방하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복숭아 나무 두 조각에 태극을 새기되, 한 태극의 가운데에 일(一) 자와 순(淳) 자를 음각하고, 한 태극의 가운데에는 시(時) 자와 헌(憲) 자를 양각하라. 복숭아 나무 한 조각에는 태을주를 새기고, 또 한 조각에 신장공우라고 새기라. 백로지는 내가 오고나서 나왔느니라. 양지를 가로 ○치, 세로 ○치로 잘라서, 경명주사로 오른쪽 위에 내 이름 태극을 찍고, 왼쪽 위에 시헌 태극을 찍고, 그 아래 가운데에 태을주를 찍고, 태을주의 중앙 왼쪽 아래에 신장공우 도장을 찍으라. 이것이 의통인패이니, 푸른 비단 주머니에 넣고 붉고 푸른 두 주머니 끈으로 허리 띠에 매달면, 괴질이 들끓는 곳에 들어가더라도 병이 함부로 덤비지 않노라.
인암이 아뢰기를, 제자가 아는 것이 없어, 태극을 모르나이다.
말씀하시기를, 전주 둥근 부채에 그려진 그림이 곧 태극이니라.
인암이 여쭈기를, 시헌이 이마두 선생이 동쪽에 와서 지은 이름이 아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곧 그 사람이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병이 와서 너희들이 천하에 덕을 베풀고 백성을 널리 건지기를 이로써 하노라. 사람에게 전하되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고생하면서 하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가려서, 나에게 일심으로 도를 받들 것을 서약하게 하고 그 뒤에 전하도록 하라. 복숭아 나무 한 조각에 무사태평이라고 새겨서, 마찬가지로 경명으로 양지에 찍어서 백성의 집에 붙이면 병이 함부로 덤비지 않느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두 가지를 무수히 찍어 두었다가, 내 덕을 펼 사람이 와서 묻거든 인패와 도장찍은 종이를 그에게 전해주라. 좋고 남는 것이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인암이 여쭈기를, 때가 되어 병이 오면 서양 사람도 또한 이로써 구하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천하가 모두 그러하니라. ]
동곡비서에
[ 6월23일에 약방에 누웠다가 다시 마루에 누웠다가 또 뜰에 누웠다가 또 사립믄 밖에 누웠다가, 형렬에게 업혀서 형렬의 집에 가시어 누웠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사 또 형렬에게 업히어, 이렇게 하기를 4∼5차를 왕복하고 나니 형렬이 피곤하거늘 또 차경석이 가름하여 두번을 더 왕복하신 후에, 또 다섯 사람을 시켜서 사지(死地)를 네사람이 어깨에 메고 머리를 한사람이 두손으로 받쳐들고 약방에 오신 후에, 마루에 누우시며 가라사대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안에 있는 정기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全羅北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姜一淳 西神司命(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서신사명)]이라 써서 불사르시니라. 이날 밤에 박공우를 부르사 침실에서 함께 주무실 새, 심야에 공우보고 " 너의 입술에 곤륜산을 달아라. 무진년 동지에 기두하여 묻는 자가 있거든 의통인패(醫統印牌) 한벌을 전하라. 좋고 나머지는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하시니라.
또 가라사대 "천고(千古) 이래로 수한도병의 겁재가 서로 번갈아서 그칠새없이 세상을 진탕하였으나 아직도 큰 병겁은 없었느니라. 당래에는 병겁이 들어오는데 천하를 진탕을 만들참이나 뉘라서 활방을 얻어 멸망하는 인종을 살리리요. 기사묘법(奇事妙法)을 알라고 하지말고 의통(醫統)을 알아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봄으로부터 이땅에 모든 재앙을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은 그대로 두고 너희들에게 의통을 붙여주리라. 순진한 마음으로 의통을 알아두라. 몸돌이킬 여가가 없고, 홍수에 밀리듯 하리라." ]
이것이 바로 인터넷에 올라있는... 많은 단체들이 믿고있는 의통인패입니다. 약간 다른 형태도 있지만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
왼쪽에 있는 것이 호신인패라 하여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며, 오른쪽에 있는 것이 호구인패라하여 집에 붙이는 것이라 합니다.
흔히 의통인패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시헌이 이마두의 호가 맞는가... 하는 문제와 만약 시헌이 이마두의 호가 맞다면, 도장의 다른 쪽에는 증산의 존명인 '일순'과 박공우의 이름인 '공우'를 새겼는데, 왜 이마두의 이름이 아닌 호인 '시헌'을 새겼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름과 호는 위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일리가 있는 의문입니다. 무턱대고 믿는 맹종보다 의문의 해결 속에서 가지는 신념이 더 큰 힘을 가지는 것이지요.
첫째, 시헌은 이마두의 호가 맞는가?
저도 역사에서 천주실의라는 책과 함께 마테오리치(중국명 이마두) 신부에 대해 처음 배운 이래로 그 분의 호가 시헌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정보가 열려있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도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는 글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더군요.
백과사전이나 다른 논문에서는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를 청태(淸泰), 서강(西江)이라고 밝히고 있고, 더러는 자를 서태(西泰)라 쓰고 있습니다.
본명은 태어나서 부모님이 붙여주는 이름으로 천지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변치않는 언약입니다.
자(字)는 보통 관례 때 부모나 집안 어른의 윗사람이 붙여주는 이름으로 자(字)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字)를 씁니다.
호(號)도 본명이나 자(字) 외에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으로 웃어른 또는 선생이 지어 주기도 하지만, 자(字)와는 달리 스스로 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호가 많기로 유명하지요. 한 500개가 넘는다고 하던데...
당시의 중국인들은 마테오리치 신부를 태서유사(泰西儒士)로 존경하여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자(字)를 서태(西泰)라고 합니다.
마테오리치 신부의 전기인 히라카와 스케히로의「마테오 리치」나 조너선 D. 스펜스가 지은「마테오 리치 - 기억의 궁전」과 같은 책에서도 그의 호가 시헌이었다는 언급은 없더군요. 제가 꼼꼼히 잘 살피지 못한 탓일 수도 있으니 마테오 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는 전기책이나 논문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인터넷에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는 글들은 전부 증산관련 단체들에서 올린 글들 뿐입니다. 그것도 죄다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퍼서 혹은 복사해서 옮겨놓은 것 뿐이지요. 그렇게 전부 인터넷에 떠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즉 인터넷에 올려진 그 어떤 글을 살펴봐도... 카톨릭과 같은 예수교 계통의 글이나 학문적 논문, 전기 등...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는 근거있는 글은 아직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 대순이나 모종단처럼 증산관련 단체들에서 올린 글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증산관련 단체들은 오로지 천지개벽경에 증산과 박공우의 대화에 나오는
[인암이 여쭈기를, 시헌이 이마두 선생이 동쪽에 와서 지은 이름이 아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곧 그 사람이니라. ]
이 문구에 의지해서 이마두의 호가 시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증산관련 단체들 쪽에서는 증산께서 계셨던 그 당시에는 조선 사람들이 '시헌'을 이마두 선생의 호로 알고 있었다고 반박하더군요. 그렇지만 당시의 조선 사람들이 시헌이 이마두의 호로 알고 있었다는 어떤 문헌적 근거는 없는 것 같고, 위 구절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듯 합니다.
박공우가 증산께 시헌이 이마두가 동쪽에 와서 지은 이름이 아니냐고 여쭈자, 증산께서는 '세상에 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곧 그 사람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맞다'고 하시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길게 돌려서 말씀하시는 것인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문구에 제가 괜시리 의문을 품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곧 그 사람이다.....'
그냥 읽으면 '공우 너의 말이 맞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왠지 미심쩍은 것은 저의 억측이겠지요^^;
시헌(時憲)이라는 말은 흔히 시헌력(時憲曆)이라는 역법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 시헌력은 청나라에 와 있던 독일 신부 아담샬에 의해 서양 역법에 기초하여 편찬되어 1644년 이후부터 청과 조선이 사용했던 역법입니다. 1610년에 베이징에서 죽은 마테오리치 신부는 명나라를 거쳐간 인물입니다. 물론 마테오리치 신부 또한 서양의 산수와 역법에 밝았으므로 그 역법의 근간을 마련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마테오리치 신부의 '천주실의'라는 책이 알려졌으므로 조선 사람들은 시헌력이 아담샬이 아닌 마테오리치 신부의 작품으로 생각해서 '시헌 = 마테오리치' 로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천주실의가 조선의 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으니까요.
그러면 시헌력에서 나온 이 시헌(時憲)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시헌(時憲)이라는 이름은 〈상서 尙書〉열명(說命) 편에 '유성시헌'(惟聖時憲)이란 표현에서 따온 것입니다. (백과사전에 나와 있음)
[ 說命中(열명중)
惟說命 總百官.
유열명 총백관
부열에게 명하여 모든 관리들을 거느리게 하셨다
乃進于王 曰嗚呼 明王奉若天道 建邦設都 樹后王君公 承以大夫師長 不惟逸豫 惟以亂民.
내진우왕 왈오호 명왕봉약천도 건방설도 수후왕군공 승이대부사장 불유일예 유이난민
이에 임금님 전에 나아가 아뢰기를 "오호라 ! 밝은 임금님은 하늘의 도를 받들고 따라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마련하며 천자와 제후들의 법도를 세우고 여러가지 벼슬과 관청의 우두머리를 임명하여 편안히 안일에만 젖지말고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셨읍니다
惟天聰明 惟聖時憲. 惟臣欽若 惟民從乂.
유천총명 유성시헌 유신흠약 유민종예
하늘이 총명하시니 성군(성인)께서 이를 따르시면 신하들은 공경하고 순종할 것이며 백성들이쫓아 따를 것입니다
惟口起羞 惟甲 起戎. 惟衣裳在 惟干戈省厥躬. 王惟戒 允 克明 乃罔不休.
유구기수 유갑주기융 유의상재사 유간과성궐궁 왕유계자 윤자극명 내망불휴
입은 수치를 일으키며 갑옷과 투구는 군사를 일으키니 옷은 옷장에두어 유용하게 써야하며 방패와 창은 그의 몸을 돌보며 신중히 써야 합니다. 임금께서 이들을 경계하시어 진실로 이에 밝으실 수 있다면, 아름답지 않음이 없으리이다
惟治亂 在庶官. 官不及私 惟其能. 爵罔及惡德 惟其賢.
유치란 재서관 관불급사닐 유기능 작망급악덕 유기현
잘다스려지고 어지러워 짐은 여러 관이에 있으니 벼슬들을 사사로이 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도록 하시고 오직 능력에 따라 주십시오." ]
시헌(時憲)은 이를 본받아 행함 또는 그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시헌이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맞든... 틀리든... 혹은 그 당시의 조선 사람들에게는 시헌이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로 잘못 알려져 있었든지 간에...
저는 증산께서 인패에 '시헌(時憲)'을 새기라고 하신 뜻을 다른데서 찾고 있습니다. 즉 시헌(時憲)의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시헌이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맞다 하더라도, 그의 호인 '시헌'이라는 글자를 통해서 증산께서 의도하고자 하는 뜻을 일꾼과 후천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를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마테오리치 신부라는 분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음편으로...
같은 일례로, 김형렬의 집안에서 나온 동곡비서의 내용도 그러합니다. 동곡비서 원본에는 끝판에 '김씨'가 나온다고 되어있다고 하는데, 대순***나 대전 모종단과 같은 단체들은 동곡비서가 김형렬이나 그 후손들이 사욕때문에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김씨' 부분을 'O씨' 또는 '돍씨'로 바꿔놓고는 자신들 교주의 성씨로 생각되어지도록 하고 있지요. 차라리 '박씨' '안씨' 처럼 그 교주 성씨를 적으면 될 것을... 그러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동곡비서의 원본에 빗대어 자신들의 왜곡이 드러나므로 교묘히 'O씨' 또는 '돍씨'라고 적고 교주의 성씨가 떠오르게끔 하고 있지요.
이 또한 김형렬이 천자(天子)가 되고자 하는 탐욕때문에 '김씨'라고 조작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전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증산의 법제자들이 직접 왜곡 또는 조작했다고 의심하면, 경전 자체의 신뢰 즉 증산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숙고해야하는 큰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증산께서도 이렇게 조작하는 자들을 당신의 법제자로 삼아 큰아들로 삼고, 만국대장에 임명하고... 등등 천지공사를 하셨다면, 그 분 또한 예수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증산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것까지 염두해두어 난법을 낸 분이기에 적어도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직계 제자들은 그런 하천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증산께서 제자들 중에서 당신을 배신할 차경석과 안내성... 등등을 염려하신 것은 경전에 나오지요. 그 분께서는 당신의 법제자들을 두루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박공우라는 사람이 증산의 말씀을 조작할 정도의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군요. 저는 박공우를 믿고 싶습니다. 박공우의 인간성을 부정하면, 이는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못한 증산의 안목을 부정하는 꼴이니까요. 적어도 경전에 나오는 말씀이 어려워 그 해석이 틀릴 수는 있어도 경전에 나오는 문구 자체를 조작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경전이 불경이나 예수경처럼 오래된 것도 아니고, 100년도 채 되지않은 것이기에 분명히 기존 종교의 경전들보다는 신뢰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대순***의 경전이나 모종단의 '도전'처럼 교주의 입장에 맞추어 왜곡된 부분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순전경 초판본이나 천지개벽경, 동곡비서처럼 오롯히 증산의 말씀만을 전하는 경전은 그래도 왜곡이 덜하다고 여기는 것이고, 적어도 없는 말을 지어내는 조작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저의 전제 조건은 그러한 신념하에 믿는 것입니다.
이제 천지개벽경에 전해지는 의통인패 제작법은 증산께서 박공우에게 전했다는 믿음하에서 이 의통인패를 다시금 바라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증산관련 단체에서도 의통인패를 완전히 믿거나 또는 완전히 부정하는 글만 있었지 의통인패를 분석한 글은 없더군요. 또 그런 판 안의 단체 안에서 의통인패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바로 난법으로 낙인찍혀서 고생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판 밖이 좋은가 봅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제 의견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천지개벽경에... (인암은 박공우의 호, 월곡은 차경석의 호)
[ 기유년 여름에 대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시며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천지대공사를 보시니, 설법하시고 행법하시사 신명에게 칙명을 내리시니라. 제자들이 명에따라 모두 물러가니,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너는 나에게 오라.
월곡이 생각하기를 반드시 명령이 있으리라 하여 몰래 마루 옆에 들어오니, 인암이 알지 못하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닥쳐올 형세가 병겁이 세상을 덮칠 것인데, 너는 어떻게 구하려느냐?
인암이 말씀드리기를,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면 제자가 어떻게 구할 수 있사오리까?
말씀하시기를, 종이를 자르되 가로는 짧고 세로는 길게하고, 나무에 태을주를 새겨 경명주사를 발라서 찍어서 입교하는 사람마다 주라. 병이 침범치 못하리니, 이것이 녹표니라.
월곡이 오래 머무르다가 들킬 것을 두려워하여 여기까지 듣고 물러가니, 인암은 알지 못하더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네 입에 병을 매달아 가벼우니, 곤륜산을 매달아라. 나는 천하사를 하러 몇일 안에 떠나노라.
인암이 아뢰기를, 하루를 모시지 못하면 하루가 무정하오니, 제자는 함께 가도록 허락하소서.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네가 갈 곳이 아니니라. 여기 있으면서 천하사를 하면 불편함이 많은데, 그 곳에 가서 하면 참으로 쉬우니라. 그곳에서 내가 일을 크게 벌리거든 너는 천하 모든 나라의 움직임을 살펴, 내가 천하사를 이와같이 하는 줄을 알도록 하라. 내가 미처 돌아오기 전에 괴질이 크게 터지면 마치 홍수가 밀리듯 하여 인간 세상을 덮치리니, 천하 모든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살아날 사람이 드무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내 덕을 펼칠 사람이 무진년 동지에 머리를 들리니, 이 사람이 세상을 구할 사람이니라. 너는 해의 차례(간지)가 무진년 봄이 되거든, 움막을 치더라도 원평에 와서 살아라. 너를 찾아와 서로 도울 사람이 있으리라.
인암이 여쭈기를, 이때를 당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무진년 동지에 기두하는 사람이나이까?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 밑에있는 신도가 재물로 너를 도와 나의 명령을 시행하노라.
인암이 여쭈기를, 아는 사람이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처음 만나는 생소한 사람이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이때가 되어 재력을 얻거든 복숭아나무 동쪽 가지 아래 자리를 마련하고, 제수를 정성껏 준비하고 몸을 씻고 계를 지켜 나에게 치성을 올리고, 복숭아 나무 동쪽 가지를 자르라. 생각하기에 급하다면 불에다 말려 서도 또한 무방하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복숭아 나무 두 조각에 태극을 새기되, 한 태극의 가운데에 일(一) 자와 순(淳) 자를 음각하고, 한 태극의 가운데에는 시(時) 자와 헌(憲) 자를 양각하라. 복숭아 나무 한 조각에는 태을주를 새기고, 또 한 조각에 신장공우라고 새기라. 백로지는 내가 오고나서 나왔느니라. 양지를 가로 ○치, 세로 ○치로 잘라서, 경명주사로 오른쪽 위에 내 이름 태극을 찍고, 왼쪽 위에 시헌 태극을 찍고, 그 아래 가운데에 태을주를 찍고, 태을주의 중앙 왼쪽 아래에 신장공우 도장을 찍으라. 이것이 의통인패이니, 푸른 비단 주머니에 넣고 붉고 푸른 두 주머니 끈으로 허리 띠에 매달면, 괴질이 들끓는 곳에 들어가더라도 병이 함부로 덤비지 않노라.
인암이 아뢰기를, 제자가 아는 것이 없어, 태극을 모르나이다.
말씀하시기를, 전주 둥근 부채에 그려진 그림이 곧 태극이니라.
인암이 여쭈기를, 시헌이 이마두 선생이 동쪽에 와서 지은 이름이 아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곧 그 사람이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병이 와서 너희들이 천하에 덕을 베풀고 백성을 널리 건지기를 이로써 하노라. 사람에게 전하되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고생하면서 하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가려서, 나에게 일심으로 도를 받들 것을 서약하게 하고 그 뒤에 전하도록 하라. 복숭아 나무 한 조각에 무사태평이라고 새겨서, 마찬가지로 경명으로 양지에 찍어서 백성의 집에 붙이면 병이 함부로 덤비지 않느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두 가지를 무수히 찍어 두었다가, 내 덕을 펼 사람이 와서 묻거든 인패와 도장찍은 종이를 그에게 전해주라. 좋고 남는 것이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인암이 여쭈기를, 때가 되어 병이 오면 서양 사람도 또한 이로써 구하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천하가 모두 그러하니라. ]
동곡비서에
[ 6월23일에 약방에 누웠다가 다시 마루에 누웠다가 또 뜰에 누웠다가 또 사립믄 밖에 누웠다가, 형렬에게 업혀서 형렬의 집에 가시어 누웠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사 또 형렬에게 업히어, 이렇게 하기를 4∼5차를 왕복하고 나니 형렬이 피곤하거늘 또 차경석이 가름하여 두번을 더 왕복하신 후에, 또 다섯 사람을 시켜서 사지(死地)를 네사람이 어깨에 메고 머리를 한사람이 두손으로 받쳐들고 약방에 오신 후에, 마루에 누우시며 가라사대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안에 있는 정기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全羅北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姜一淳 西神司命(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서신사명)]이라 써서 불사르시니라. 이날 밤에 박공우를 부르사 침실에서 함께 주무실 새, 심야에 공우보고 " 너의 입술에 곤륜산을 달아라. 무진년 동지에 기두하여 묻는 자가 있거든 의통인패(醫統印牌) 한벌을 전하라. 좋고 나머지는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하시니라.
또 가라사대 "천고(千古) 이래로 수한도병의 겁재가 서로 번갈아서 그칠새없이 세상을 진탕하였으나 아직도 큰 병겁은 없었느니라. 당래에는 병겁이 들어오는데 천하를 진탕을 만들참이나 뉘라서 활방을 얻어 멸망하는 인종을 살리리요. 기사묘법(奇事妙法)을 알라고 하지말고 의통(醫統)을 알아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봄으로부터 이땅에 모든 재앙을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은 그대로 두고 너희들에게 의통을 붙여주리라. 순진한 마음으로 의통을 알아두라. 몸돌이킬 여가가 없고, 홍수에 밀리듯 하리라." ]
이것이 바로 인터넷에 올라있는... 많은 단체들이 믿고있는 의통인패입니다. 약간 다른 형태도 있지만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
왼쪽에 있는 것이 호신인패라 하여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며, 오른쪽에 있는 것이 호구인패라하여 집에 붙이는 것이라 합니다.
흔히 의통인패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시헌이 이마두의 호가 맞는가... 하는 문제와 만약 시헌이 이마두의 호가 맞다면, 도장의 다른 쪽에는 증산의 존명인 '일순'과 박공우의 이름인 '공우'를 새겼는데, 왜 이마두의 이름이 아닌 호인 '시헌'을 새겼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름과 호는 위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일리가 있는 의문입니다. 무턱대고 믿는 맹종보다 의문의 해결 속에서 가지는 신념이 더 큰 힘을 가지는 것이지요.
첫째, 시헌은 이마두의 호가 맞는가?
저도 역사에서 천주실의라는 책과 함께 마테오리치(중국명 이마두) 신부에 대해 처음 배운 이래로 그 분의 호가 시헌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정보가 열려있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도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는 글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더군요.
백과사전이나 다른 논문에서는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를 청태(淸泰), 서강(西江)이라고 밝히고 있고, 더러는 자를 서태(西泰)라 쓰고 있습니다.
본명은 태어나서 부모님이 붙여주는 이름으로 천지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변치않는 언약입니다.
자(字)는 보통 관례 때 부모나 집안 어른의 윗사람이 붙여주는 이름으로 자(字)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字)를 씁니다.
호(號)도 본명이나 자(字) 외에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으로 웃어른 또는 선생이 지어 주기도 하지만, 자(字)와는 달리 스스로 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호가 많기로 유명하지요. 한 500개가 넘는다고 하던데...
당시의 중국인들은 마테오리치 신부를 태서유사(泰西儒士)로 존경하여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자(字)를 서태(西泰)라고 합니다.
마테오리치 신부의 전기인 히라카와 스케히로의「마테오 리치」나 조너선 D. 스펜스가 지은「마테오 리치 - 기억의 궁전」과 같은 책에서도 그의 호가 시헌이었다는 언급은 없더군요. 제가 꼼꼼히 잘 살피지 못한 탓일 수도 있으니 마테오 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는 전기책이나 논문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인터넷에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는 글들은 전부 증산관련 단체들에서 올린 글들 뿐입니다. 그것도 죄다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퍼서 혹은 복사해서 옮겨놓은 것 뿐이지요. 그렇게 전부 인터넷에 떠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즉 인터넷에 올려진 그 어떤 글을 살펴봐도... 카톨릭과 같은 예수교 계통의 글이나 학문적 논문, 전기 등...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시헌이라는 근거있는 글은 아직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 대순이나 모종단처럼 증산관련 단체들에서 올린 글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증산관련 단체들은 오로지 천지개벽경에 증산과 박공우의 대화에 나오는
[인암이 여쭈기를, 시헌이 이마두 선생이 동쪽에 와서 지은 이름이 아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곧 그 사람이니라. ]
이 문구에 의지해서 이마두의 호가 시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증산관련 단체들 쪽에서는 증산께서 계셨던 그 당시에는 조선 사람들이 '시헌'을 이마두 선생의 호로 알고 있었다고 반박하더군요. 그렇지만 당시의 조선 사람들이 시헌이 이마두의 호로 알고 있었다는 어떤 문헌적 근거는 없는 것 같고, 위 구절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듯 합니다.
박공우가 증산께 시헌이 이마두가 동쪽에 와서 지은 이름이 아니냐고 여쭈자, 증산께서는 '세상에 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곧 그 사람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맞다'고 하시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길게 돌려서 말씀하시는 것인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문구에 제가 괜시리 의문을 품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곧 그 사람이다.....'
그냥 읽으면 '공우 너의 말이 맞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왠지 미심쩍은 것은 저의 억측이겠지요^^;
시헌(時憲)이라는 말은 흔히 시헌력(時憲曆)이라는 역법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 시헌력은 청나라에 와 있던 독일 신부 아담샬에 의해 서양 역법에 기초하여 편찬되어 1644년 이후부터 청과 조선이 사용했던 역법입니다. 1610년에 베이징에서 죽은 마테오리치 신부는 명나라를 거쳐간 인물입니다. 물론 마테오리치 신부 또한 서양의 산수와 역법에 밝았으므로 그 역법의 근간을 마련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마테오리치 신부의 '천주실의'라는 책이 알려졌으므로 조선 사람들은 시헌력이 아담샬이 아닌 마테오리치 신부의 작품으로 생각해서 '시헌 = 마테오리치' 로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천주실의가 조선의 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으니까요.
그러면 시헌력에서 나온 이 시헌(時憲)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시헌(時憲)이라는 이름은 〈상서 尙書〉열명(說命) 편에 '유성시헌'(惟聖時憲)이란 표현에서 따온 것입니다. (백과사전에 나와 있음)
[ 說命中(열명중)
惟說命 總百官.
유열명 총백관
부열에게 명하여 모든 관리들을 거느리게 하셨다
乃進于王 曰嗚呼 明王奉若天道 建邦設都 樹后王君公 承以大夫師長 不惟逸豫 惟以亂民.
내진우왕 왈오호 명왕봉약천도 건방설도 수후왕군공 승이대부사장 불유일예 유이난민
이에 임금님 전에 나아가 아뢰기를 "오호라 ! 밝은 임금님은 하늘의 도를 받들고 따라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마련하며 천자와 제후들의 법도를 세우고 여러가지 벼슬과 관청의 우두머리를 임명하여 편안히 안일에만 젖지말고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셨읍니다
惟天聰明 惟聖時憲. 惟臣欽若 惟民從乂.
유천총명 유성시헌 유신흠약 유민종예
하늘이 총명하시니 성군(성인)께서 이를 따르시면 신하들은 공경하고 순종할 것이며 백성들이쫓아 따를 것입니다
惟口起羞 惟甲 起戎. 惟衣裳在 惟干戈省厥躬. 王惟戒 允 克明 乃罔不休.
유구기수 유갑주기융 유의상재사 유간과성궐궁 왕유계자 윤자극명 내망불휴
입은 수치를 일으키며 갑옷과 투구는 군사를 일으키니 옷은 옷장에두어 유용하게 써야하며 방패와 창은 그의 몸을 돌보며 신중히 써야 합니다. 임금께서 이들을 경계하시어 진실로 이에 밝으실 수 있다면, 아름답지 않음이 없으리이다
惟治亂 在庶官. 官不及私 惟其能. 爵罔及惡德 惟其賢.
유치란 재서관 관불급사닐 유기능 작망급악덕 유기현
잘다스려지고 어지러워 짐은 여러 관이에 있으니 벼슬들을 사사로이 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도록 하시고 오직 능력에 따라 주십시오." ]
시헌(時憲)은 이를 본받아 행함 또는 그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시헌이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맞든... 틀리든... 혹은 그 당시의 조선 사람들에게는 시헌이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로 잘못 알려져 있었든지 간에...
저는 증산께서 인패에 '시헌(時憲)'을 새기라고 하신 뜻을 다른데서 찾고 있습니다. 즉 시헌(時憲)의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시헌이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가 맞다 하더라도, 그의 호인 '시헌'이라는 글자를 통해서 증산께서 의도하고자 하는 뜻을 일꾼과 후천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마테오리치 신부의 호를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마테오리치 신부라는 분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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