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_예지자-정감 계룡도읍은 서요동:대전공사의 비밀-조화정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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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4.♡.206.36) 작성일13-12-11 16:59 조회7,531회 댓글0건본문
청풍명월금산사의 진정한 의미
청풍은 대청호를 상징하는 충청도의 상징이며,구체적으로는 계룡산(숫계룡)기운을 의미하며,이 기운이 금강을 타고 오성산과 군산에서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익산 미륵사와 모악산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본거지이기 때문에 이 일대에 서요동과 동요동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실제 계룡산 신도안은 혈자리이지 도읍지 자리가 아니며,대전도 작은 도읍지 자리이지 후천선경을 여는 조화정부 자리가 아니다.대전이 태전이라는 주장은 신도안의 확대재생산의 주장일 뿐이다.다만 천지공사에서 계룡산과 대전은 대한민국 중심에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자 분기점 역할을 하고 있다.천지공사에 나타난 계룡산과 대전공사의 진정한 비밀을 분석하고자 한다.
다른 의미로 본다면,전라남도가 고천황후님의 고향이기 때문에 원 명월의 고향이다.청풍은 금강의 기운이 담긴 충청남도라면,명월은 섬진강과 영산강 기운이 담김 전라남도라는 광의의 해석도 가능하다.청풍명월은 충청남도와 전라남도를 의미하며,금산사는 전라북도(전북칠읍)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림설명]대한민국 지리원리를 인체에 비유한 것이다.백두대간의 흐름이 금강산을 지나 남하하다가 태백산에서 서진하여 속리산에서 남진을 하는 분기점 역할을 한다.속리산에서 영취산까지 남하하다 지맥이 서진하여 마이산에서 양갈래를 보이고,영취산의 주 맥은 지리산까지 이어진다.지리산에서 더 이상 진행을 못하기 때문에 지리산 인근에 있는 광라주를 패운이라고 한 것은 한계문인 폐(닫는다)운의 오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영취산에서 모인 지맥이 마이산에 갈려져 나와,북으로 금남정맥이 나오고 남으로 호남정맥이 나온다.그러나.세부지맥인 금남지맥이 정서진하여 군산에 이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드믈고,서요동 천지공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태백은 태반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해도 되며,속리산부터 영취산까지 태아를 기르는 실질적인 태반역활을 한다고 보면된다.태반에서 탯줄이 나오듯이 세 개의 산맥이 나온다고 이해하면 된다.상제님께서 후천 수도로 정하신 전북칠읍의 방대한 자리는 태아가 자라는 공간(도통군자)이고,새만금의 간척공사는 배가 불러오는 형상이라고 보면 된다.군산을 어복이자 항문이라고 비유한 것도 이러한 이치이다.
태아(후천용)가 자라는 양수역활을 하는 근원지는 옥정으로 보면 된다.
▣ 상제님께서 “억수가 온다! 대수가 온다! 천하수(天下水)가 온다!” 하시며 낚싯대를 챙겨 들고 부리나케 제비산으로 올라가시니 (도전 5:272)
▣ 어느날 신정공사를 베푸시며 고후비께서 가라사대 너희들이 이 천지에 천만겁으로 쌓인 이 겁을 돌려 잡을 수 있느냐.상조 중조 하조로 구분하고 또한 천지인조로 구분하도록 하리니라.오성산은 북방 일육수라야 채울 수 있으리라 (선도신정경)
<천하수(天下水)가 온다!” 하시며 낚싯대를 챙겨 들고 부리나케 제비산으로 올라가시니>에서 본다면 동요동인 제비산에 엄청난 천하수가 내려온다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오성산은 북방 일육수라야 채울 수 있으리라>에서 본다면 오상산 위를 실제 물로 채운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태아의 양수같은 수기운이 가득찬다는 것을 암시한다.
천지공사를 한다는 것은 본체수이자 잉태를 의미하는 것이며,이후 임신기간과 같은 시간의 성숙이 되어야 애기가 나오듯이 후천개벽이 이루어 진 것이다.애기가 나오기 전에 진통이 오는 것은 지진과 홍수를 의미하며,임산부의 고통은 괴질병겁으로 이해해야 한다.그래서 군산을 어복이자 항문(생식기)으로 표현한 것이다.그러므로 아직도 대벽은 요원한 것이며,개벽이전에 이루어질 천지공사 내용이 엄청나게 많지만,시한부 개벽론에 사로잡혀 그 내용을 모른 상황이거나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개벽은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시간 동안 누구나 개벽이 온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 예정된 개벽이 오는 것이지 태평세월의 현 흐름에서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과거 소 개벽에서도 9년홍수 7년대한이라는 엄청남 사건이후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태아의 양수는 크게 보면 금강과 영산강의 안쪽이며,구체적인 핵심코어는 낙반사유의 4강인 만경강,신평천,원평천,동진강을 의미한다.6개의 강이 북방을 뜻하는 (1.6 水)에 맞게 응기되고 있다.옥정호는 6개의 수를 만드는 1수에 해당한다.그래서 수운통일 공사를 본 것이며,양수가 자라고 도통군자인 태아가 자라는 곳이 전북칠읍이고 후천 도읍지인 것이다. 산기운과 지기운 그리고 물기운을 통일시키는 것도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이해하면 된다.
22.대전 계룡산공사-콩밭공사와 철도공사의 이해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계획표이자 상제님 신도를 증인으로 세워 신명계에 명령을 내리는 신정공사이기 때문에 인간 현상계 개입을 하지 않았으며,상제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증거로만 활용하셨다.대한민국이 후천종주국이 되려면 개벽이전에 선진국에 거의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공사를 보셨기에 수많은 시간들이 필요했으며,실제로 그렇게 되어야만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수긍을 할 것이다.한류열풍은 그러한 조짐을 문화계에서 조짐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여진다.이러한 차워에서 본다면 조선을 문명국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으며,잠시 일본에 조선 명운을 의탁한 사이에 개화가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며,천지공사를 보는 1901년 이후와 철도공사는 거의 일치하면서 진행되었다.이러한 상황에서 대전이 교통의 중심지로 떠 오르면서 보양물을 의미하는 콩밭공사를 대전 텃밭에서 보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한민국 성장의 축소판을 대전으로 비유한다면,보양물을 먹고 낮잠자는 것은 급속한 경제화를 보이면서 산업화의 선두를 달려 선진국 대열에 올라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대전이 대한민국 중심이기 때문이다.속리산의 물기운은 금강과 한강을 지배하고,대전의 지리는 대한민국의 교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이후 호남으로 분기점이 되어 키 역할을 하는 연결고리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설명]<동여도>는 <대동여지도>와 산계와 수계, 도로망을 비롯한 대부분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나, 필사본으로 제작한 지도로 <대동여지도>보다 더 많은 지명을 담고 있다.대동여지도는 1834년(순조 34)에 김정호 자신이 제작한 〈청구도 靑邱圖〉를 27년 후에 증보 수정해 1861년(철종 12)에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교간(校刊)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나온 조선지도인 동여도와 대동여지도를 보면,현 대전영역에 대전이나 태전지명은 존재하지 않는다.회덕이나 보은이 대표지명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대전에 있는 산지명과 인근지명은 그대로 존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대전이나 태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대전의 원지명이 태전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태전에서 대전으로 바꾸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이재전전의 예언서에 나온 지명이 대전이 아니며,상제님 공사에 나타난 태전을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런데 어떻게 대전지명이 생성되었고 일시적으로 태전이라고 불리우는 계기가 마련되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신흥교통도시 대전
조선시대인 1413년, 공주목의 회덕현(懷德縣)과 진잠현(鎭岑縣)의 지역이 되었으며.일제 강제통치가 이루어지기 전인 1896년 충청남도 회덕군, 진잠군으로 개편하였다.대전(한밭)이라는 지명이 있는 작은 마을은 경부선 철도공사가 진행되면서 1904년, 대전수비대,대전순사주재소등이 설치되고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개통과 함께 일본인이 대전천과 대동천의 합류 지점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발전을 시작했는데,이 당시에도 회덕이 모든 경제와 생활의 중심이었다.다만 신설역인근 한밭마을 또는 대전으로 불리우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대전역으로 불리우게 된 것이고,대전리에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된 것이다.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회덕군과 진잠군, 공주의 일부를 통합해 대전면이 신설되면서 회덕군 중심의 행정기능이 급속하게 대전역으로 이동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도 회덕에서 대전으로 뒤바뀌는 역사가 진행된 것을 볼 수 있다.
대전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5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7권 ‘공주목 산천’조에 “대전천은 유성현 동쪽 25리에 있으니, 전라도 금산군 경계에서 나왔다”고 설명되어 있다.대전이 아닌 대전천으로 기록된 것이며,후일 일제 강점기 전에 대전이라는 지명이 여러 고문서에 등장한다.그런데 태전지명의 논쟁이 나온 이유의 근원이 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인 전중여수가 지은 <대전발전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합일강제합병이 되기 1년전인 1909년 1월에 순종을 모시고 부산을 다녀오던 길에 열차가 태전 역에서 장시간 정차할 때,태전의 풍광이 수려하고 한문 글뜻이 크다는 太 字 인걸보고 太 자에서 점하나 떼고 그냥 大 字를 써서 대전으로 부르라고 명령했다.그러나 근거없는 풍문을 기록한 내용일 뿐이다.1909년 이전에도 태전과 대전이라는 지명이 혼재되어 나타났다는 점을 볼수 있으며 태전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05년 대전역이 신설된 이후이며,1910년 이후에 대전이라는 이름으로 굳혀지는 것이 대전 이름의 유래와 역사이다.
실제 대전역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이 관공서 자료에 등장하는데,<沃溝港報牒- 大田停車場에서 物包를 찾으니 4包 뿐이어서<발신처 沃溝監理 鄭恒朝 (1904년 12월 5일)>라고 기록되어 있다.1904년부터 등장하고 있다.태전역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자료를 보면<起案-太田驛을 거쳐 南大門驛에 도착하는 일정을 알리는 電報 제19호. <발신처-大邱內閣陪從所(1909년 1월 13일)>라고 나온다.이등방문의 개명지시가 내려지는 시점인데,그렇게 빨리 개명이 될 수 없으므로 이등방문 사건 전에 태전지명이 등장한다고 보아야 하며,실제 1909년 이전에 태전으로 불리운 기록은 많다는 점에서 이등박문의 대전지명 개조설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대전지명이후에 태전지명이 가세되면서 혼용된 이유는 대전역 인근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대전보다 태전으로 부르는 것이 더 편해 혼용되다가 1910년 한일합병이 된 이후에 대전으로 통일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보였다.중요한 것은 뒤에 전(田)을 붙이는 것은 일본식 작명이라는 점이다.더 중요한 것은 대전이든 태전이든 이 지역이 대한민국의 태반역활을 한다는 것이다.
만일 대전이 나쁜 이름이라면 대한민국을 태한민국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상제님이 대한민국의 국호를 대시국으로 칭하도록 공사를 보신 것으로 보아 결코 대는 나쁜 의미는 아니며.대한민국이 대중화가 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더 긍정적이라고 본다.특정교단에서 대전 원지명이 태전이라는 지명을 고집한 이유는 상제님 공사에서 태전에 후천대업의 푯대를 꽂았다는 지역이 대전이라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아전인수의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대전의 대를 꺽기 위해 말뚝을 밖는 것처럼 태로 고칠 수 있는 것이다.해석하기 나름인 것이지 대가 나쁘고 태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애기이다.
대전이 개발되기 전에 콩밭이기 때문에 대전이 아닌 태전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이러한 이유로 생겨난 지역은 많다.대구 북구 태전동이 이에 해당한다. 대구 태복산 밑에 많은 콩밭을 이루었다고 해서 태복산의 태(太)와 밭 전(田) 을 따거나 콩 태(太)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진해는 벚꽃으로 유명한데.일본식 이름인 대전(大田)과 태전(太田)의 거리가 존재한다는 점도 타산지석이다.
정읍으로 가는 호남선 공사의 비밀
▣ 이어서 종이 한 장을 가져오라 하시어 우리나라 형상의 지도를 그리시고 각처로 철도선을 그리신 다음 선마다 점을 쳐서 역을 표시하시니라. 또 한 점에 ‘정읍’이라 쓰시고 그 남쪽에 점을 찍어 ‘사거리’라 쓰신 뒤에 두 점 중앙에 점을 찍으려다 그치기를 여러 번 하시더니 대흥리를 떠나실 때 점을 찍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점이 되는 때에 세상일이 바로잡히게 되리라.” 하시니라. 또 지도 한가운데에 선 하나를 가로로 그으시되 그 선에는 점을 찍지 않으시니라. (도전 5:349)
<우리나라 형상의 지도를 그리시고 각처로 철도선을 그리신 다음>에서 본다면,남조선의 철도 혈맥을 계획하는 공사를 보신 것으로 판단된다.위 공사를 보신 시기를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경부선 개통년인 1905년은 천지공사의 시기인 1901~1909년 안에 있기 때문에 경부선 설계부터 천지공사가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위 공사 내용은 호남선 가지 철도맥을 내는 공사로 보인다.
<‘정읍’이라 쓰시고 그 남쪽에 점을 찍어 ‘사거리’라 쓰신 뒤에 두 점 중앙에 점을 찍으려다>에서 본다면,정읍을 관통해서 호남선을 착공하라는 천지공사 내용인 것이다.정읍역 다음이 사거리역인데.실제로 일제강점기 철도지도를 보면 정확하게 사거리(1967년 백양사역으로 개명)역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천지공사의 정확성에 다시 한번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림설명]일제시대 철도역을 안내하는 지도이다.일부 태전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대부분 대전역으로 표시된 지도이다.철도역 이름이 대전으로 표기되면서 대전의 대표이름 회덕은 자연스럽게 밀려나는 모습을 오른쪽 상단에서 볼 수 있다.그 당시 철도 모습은 두 팔과 다리는 벌리는 대(大)자형 철도그림이다.정읍이 바로 태(太)자형의 점표시 지역임을 알 수 있다.아래 3개 지역 사진을 보면 대전역을 기점으로 호남선이 빠져 나오고 있다.정읍역 표시 다음 역이 모두 사거리역임을 알 수 있다.
정읍역과 사거리(백양사)역에 점을 찍으려나 번복하면서 나중에 찍는 것으로 보아 한참 늦게 일이 추진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후일 이곳을 기점으로 새로운 교통중심지가 되는 구상이 실현되거나 어떤 강력한 중심지 역할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점이 되는 때에 세상일이 바로잡히게 되리라.”>에서 본다면 정읍이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대한민국의 중심이자 조화정부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혹자는 대전이 이미 교통의 중심인데 어떻게 바뀔 수 있냐고 반문하겠지만,서해가 육지가 되고 동양삼국이 하나가 되면서 한국은 남통만리 대국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중심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술에서 새로운 후천지도 상상도 분석글 예정)
< 지도 한가운데에 선 하나를 가로로 그으시되 그 선에는 점을 찍지 않으시니라>에서 본다면,지도 한가운데를 선 하나를 가로로 그린다는 것은 대륙철도 내지 한중 해저터널과 한일 해저터널을 의미하며,한중이나 한일 해저터널일 가능성이 많다.이미 수년전부터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그림설명]한중해저터널과 한일 해저터널 그리고 제주로 가는 해저터널등 다양한 노선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한중일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대륙실크로드의 기점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천지공사를 의미한다.한중 해저터널이 가능한 것은 서해가 수심이 깊어도 100m가 넘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다.산동반도는 상해와 북경의 제남에서 산동으로 이어져 한국으로 넘오는 길목인데,경기도 인천.화성과 충청도 평택.당진 전라도 군산 새만금이 거론되고 있다.또는 새로운 루트인 상해에서 제주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또한,부산과 일본 한일 해저터널 구상과 목포와 제주 해저터널 구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중과 한일 해저터널의 중심지가 전라도 군산과 정읍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새만금과 산동성 연결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 상제님 공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현실적으로 다른 노선보다 수심이 낮을 뿐 아니라,암반이 잘 발달해 안전한 지형구조를 가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실제 박근혜 정부의 구상이자 박정희 프로젝트의 비밀안인 가로림만 프로젝트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한일 해저터널이 부산이나 거제로 연결되면 한중해저터널의 종착지와 연결되는데,거제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하면,통영 대전 고속도로를 따라 통영-사천-산청-함양-장수-진안-전주로 이어지거나.통영-사천-광명-순천-광주-장성-정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한중과 한일해저의 만남은 전라도 일대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중 해저터널의 한국 종점이 새만금과 군산이 되고 한일 해저터널과 만나는 한중 해저터널 지역이 정읍이 된다면 한·중·일을 대표하는 동북아의 관문이면서 후천조화정부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가로로 선을 그은 양상은 한중 한일 해저터널이 지나가는 새로운 교통로일 가능성이 존재하며,군산으로 한중해저터널이 결정된다면,군산과 정읍은 한일 해저터널이 한국으로 넘어와서 만나는 연결점으로 분석된다.
대전 철도공사와 콩밭공사는 태반의 역할이자 3변 교운의 분기점
▣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일 년 중에 가장 빨리 자라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모두 “대나무입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4 말씀하시기를 “대(竹)의 기운이 만물 중에 제일 크니 그 기운을 덜어 쓰리라.” 하시니라.(중략) 또 말씀하시기를 “도운(道運)의 개시(開始)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를 이루리라.” 하시니라. 이 해에 대가 크게 흉년이 드니라.(도전 6:106)
<“일 년 중에 가장 빨리 자라나는 것이 무엇이냐?”>에서 본다면,가장 빨리 성장하기 위한 기운으로 대나무 기운을 취한다는 점에서 식물의 속성을 이용해 교운공사를 보았다.<이 해에 대가 크게 흉년이 드니라.>에서 본다면 기운을 취했기 때문에 대나무가 흉년이 들어 없어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상제님께서 공우를 데리고 김제 봉황산(鳳凰山)을 지나시다가 말씀하시기를 “저기 저 산이 황우산(黃牛山)이니라. 애기씨름, 총각씨름 다 지내고 비교씨름 상씨름에는 황우를 거는데 봉황산 와우(臥牛)로 씨름판 소를 걸어 놓았느니라. 상씨름 하는 자는 콩밭 이슬을 맞으며 판밖에서 술 고기 많이 먹고 있다가 ‘아우’ 소리 한 번에 똑 한 사람 지우고 황우를 몰아가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6:56)
상씨름의 상금으로 소를 거는데,소기운을 가지는 산이 김제 봉황산임을 알 수 있다.봉황산에 상씨름 기운이 응기한 것을 알 수 있는데,대전의 봉황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제가 진정한 콩밭이자 태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상제님께서 서산(西山)에 이르시어 공우에게 물으시기를 “공우야, 내가 텃밭을 찾아가는데 내 텃밭이 어디로 가야 있겠느냐?” 하시거늘 수부님께서 불쑥 대답하시기를 “당신 마음먹고 가시는 길이 텃밭 아닙니까?” 하시니라. 이어 공우가 상제님께 여쭙기를 “어디로 가시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임피로 해서 태전 간다.” 하시니라. (도전 5:299)
< “공우야, 내가 텃밭을 찾아가는데 내 텃밭이 어디로 가야 있겠느냐?”>에서 본다면,실제 콩밭지역에 가서 콩밭기운을 거두는 것을 알 수 있는데,콩밭공사가 아닌 텃밭공사임을 알 수 있다. 콩밭공사는 순창 회문산등 전북칠읍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이미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가장 큰 콩밭이 있는 지역이 대전이기 때문에 간 것이다.
텃밭공사 이후 콩밭천지인 대전은 콩밭이 없어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므로 대나무공사이후 대나무 흉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대전은 실제 한반도 태반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계룡산의 기운을 끌어쓰기 위해 계룡산 정상에서 닭울음소리를 내는 공사도 보시고 대전 태봉산에 올라 태봉기를 흔드는 공사를 본 것이다.대전에서 행한 대다수 천지공사의 상징인 봉황이나 태봉 계룡은 모두 고천황후님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금강하구로 계룡산 기운를 모아서 군산과 오성산에 있는 명월의 도시 서요동에 조화정부를 건설하는 기운을 취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대전에는 조화정부 어떤 시설이나 궁이 들어선다는 내용이 일체없고 조화정부의 구역에 세종이나 대전이 빠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전히 자신의 교단이 있던 지역이 후천의 수도라는 아집 속에 왜곡된 성구해석을 조장하고 있으며.자신의 교단이 종통이라는 논리 속에 수많은 천지공사의 내용을 자신의 교단과 관계가 있거나 자신의 지도자를 암시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진리를 조작하고 있다.100년 교운의 역사 속에서 난번의 진리해석이 사라지고 새로운 해석 속에 진법의 참신앙이 태동되는 것이 풍류주세백년진(風流酒洗百年塵)일 것이다.
청풍은 대청호를 상징하는 충청도의 상징이며,구체적으로는 계룡산(숫계룡)기운을 의미하며,이 기운이 금강을 타고 오성산과 군산에서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익산 미륵사와 모악산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본거지이기 때문에 이 일대에 서요동과 동요동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실제 계룡산 신도안은 혈자리이지 도읍지 자리가 아니며,대전도 작은 도읍지 자리이지 후천선경을 여는 조화정부 자리가 아니다.대전이 태전이라는 주장은 신도안의 확대재생산의 주장일 뿐이다.다만 천지공사에서 계룡산과 대전은 대한민국 중심에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자 분기점 역할을 하고 있다.천지공사에 나타난 계룡산과 대전공사의 진정한 비밀을 분석하고자 한다.
다른 의미로 본다면,전라남도가 고천황후님의 고향이기 때문에 원 명월의 고향이다.청풍은 금강의 기운이 담긴 충청남도라면,명월은 섬진강과 영산강 기운이 담김 전라남도라는 광의의 해석도 가능하다.청풍명월은 충청남도와 전라남도를 의미하며,금산사는 전라북도(전북칠읍)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림설명]대한민국 지리원리를 인체에 비유한 것이다.백두대간의 흐름이 금강산을 지나 남하하다가 태백산에서 서진하여 속리산에서 남진을 하는 분기점 역할을 한다.속리산에서 영취산까지 남하하다 지맥이 서진하여 마이산에서 양갈래를 보이고,영취산의 주 맥은 지리산까지 이어진다.지리산에서 더 이상 진행을 못하기 때문에 지리산 인근에 있는 광라주를 패운이라고 한 것은 한계문인 폐(닫는다)운의 오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영취산에서 모인 지맥이 마이산에 갈려져 나와,북으로 금남정맥이 나오고 남으로 호남정맥이 나온다.그러나.세부지맥인 금남지맥이 정서진하여 군산에 이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드믈고,서요동 천지공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태백은 태반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해도 되며,속리산부터 영취산까지 태아를 기르는 실질적인 태반역활을 한다고 보면된다.태반에서 탯줄이 나오듯이 세 개의 산맥이 나온다고 이해하면 된다.상제님께서 후천 수도로 정하신 전북칠읍의 방대한 자리는 태아가 자라는 공간(도통군자)이고,새만금의 간척공사는 배가 불러오는 형상이라고 보면 된다.군산을 어복이자 항문이라고 비유한 것도 이러한 이치이다.
태아(후천용)가 자라는 양수역활을 하는 근원지는 옥정으로 보면 된다.
▣ 상제님께서 “억수가 온다! 대수가 온다! 천하수(天下水)가 온다!” 하시며 낚싯대를 챙겨 들고 부리나케 제비산으로 올라가시니 (도전 5:272)
▣ 어느날 신정공사를 베푸시며 고후비께서 가라사대 너희들이 이 천지에 천만겁으로 쌓인 이 겁을 돌려 잡을 수 있느냐.상조 중조 하조로 구분하고 또한 천지인조로 구분하도록 하리니라.오성산은 북방 일육수라야 채울 수 있으리라 (선도신정경)
<천하수(天下水)가 온다!” 하시며 낚싯대를 챙겨 들고 부리나케 제비산으로 올라가시니>에서 본다면 동요동인 제비산에 엄청난 천하수가 내려온다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오성산은 북방 일육수라야 채울 수 있으리라>에서 본다면 오상산 위를 실제 물로 채운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태아의 양수같은 수기운이 가득찬다는 것을 암시한다.
천지공사를 한다는 것은 본체수이자 잉태를 의미하는 것이며,이후 임신기간과 같은 시간의 성숙이 되어야 애기가 나오듯이 후천개벽이 이루어 진 것이다.애기가 나오기 전에 진통이 오는 것은 지진과 홍수를 의미하며,임산부의 고통은 괴질병겁으로 이해해야 한다.그래서 군산을 어복이자 항문(생식기)으로 표현한 것이다.그러므로 아직도 대벽은 요원한 것이며,개벽이전에 이루어질 천지공사 내용이 엄청나게 많지만,시한부 개벽론에 사로잡혀 그 내용을 모른 상황이거나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개벽은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시간 동안 누구나 개벽이 온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 예정된 개벽이 오는 것이지 태평세월의 현 흐름에서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과거 소 개벽에서도 9년홍수 7년대한이라는 엄청남 사건이후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태아의 양수는 크게 보면 금강과 영산강의 안쪽이며,구체적인 핵심코어는 낙반사유의 4강인 만경강,신평천,원평천,동진강을 의미한다.6개의 강이 북방을 뜻하는 (1.6 水)에 맞게 응기되고 있다.옥정호는 6개의 수를 만드는 1수에 해당한다.그래서 수운통일 공사를 본 것이며,양수가 자라고 도통군자인 태아가 자라는 곳이 전북칠읍이고 후천 도읍지인 것이다. 산기운과 지기운 그리고 물기운을 통일시키는 것도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이해하면 된다.
22.대전 계룡산공사-콩밭공사와 철도공사의 이해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계획표이자 상제님 신도를 증인으로 세워 신명계에 명령을 내리는 신정공사이기 때문에 인간 현상계 개입을 하지 않았으며,상제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증거로만 활용하셨다.대한민국이 후천종주국이 되려면 개벽이전에 선진국에 거의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공사를 보셨기에 수많은 시간들이 필요했으며,실제로 그렇게 되어야만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수긍을 할 것이다.한류열풍은 그러한 조짐을 문화계에서 조짐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여진다.이러한 차워에서 본다면 조선을 문명국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으며,잠시 일본에 조선 명운을 의탁한 사이에 개화가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며,천지공사를 보는 1901년 이후와 철도공사는 거의 일치하면서 진행되었다.이러한 상황에서 대전이 교통의 중심지로 떠 오르면서 보양물을 의미하는 콩밭공사를 대전 텃밭에서 보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한민국 성장의 축소판을 대전으로 비유한다면,보양물을 먹고 낮잠자는 것은 급속한 경제화를 보이면서 산업화의 선두를 달려 선진국 대열에 올라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대전이 대한민국 중심이기 때문이다.속리산의 물기운은 금강과 한강을 지배하고,대전의 지리는 대한민국의 교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이후 호남으로 분기점이 되어 키 역할을 하는 연결고리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설명]<동여도>는 <대동여지도>와 산계와 수계, 도로망을 비롯한 대부분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나, 필사본으로 제작한 지도로 <대동여지도>보다 더 많은 지명을 담고 있다.대동여지도는 1834년(순조 34)에 김정호 자신이 제작한 〈청구도 靑邱圖〉를 27년 후에 증보 수정해 1861년(철종 12)에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교간(校刊)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나온 조선지도인 동여도와 대동여지도를 보면,현 대전영역에 대전이나 태전지명은 존재하지 않는다.회덕이나 보은이 대표지명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대전에 있는 산지명과 인근지명은 그대로 존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대전이나 태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대전의 원지명이 태전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태전에서 대전으로 바꾸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이재전전의 예언서에 나온 지명이 대전이 아니며,상제님 공사에 나타난 태전을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런데 어떻게 대전지명이 생성되었고 일시적으로 태전이라고 불리우는 계기가 마련되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신흥교통도시 대전
조선시대인 1413년, 공주목의 회덕현(懷德縣)과 진잠현(鎭岑縣)의 지역이 되었으며.일제 강제통치가 이루어지기 전인 1896년 충청남도 회덕군, 진잠군으로 개편하였다.대전(한밭)이라는 지명이 있는 작은 마을은 경부선 철도공사가 진행되면서 1904년, 대전수비대,대전순사주재소등이 설치되고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개통과 함께 일본인이 대전천과 대동천의 합류 지점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발전을 시작했는데,이 당시에도 회덕이 모든 경제와 생활의 중심이었다.다만 신설역인근 한밭마을 또는 대전으로 불리우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대전역으로 불리우게 된 것이고,대전리에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된 것이다.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회덕군과 진잠군, 공주의 일부를 통합해 대전면이 신설되면서 회덕군 중심의 행정기능이 급속하게 대전역으로 이동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도 회덕에서 대전으로 뒤바뀌는 역사가 진행된 것을 볼 수 있다.
대전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5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7권 ‘공주목 산천’조에 “대전천은 유성현 동쪽 25리에 있으니, 전라도 금산군 경계에서 나왔다”고 설명되어 있다.대전이 아닌 대전천으로 기록된 것이며,후일 일제 강점기 전에 대전이라는 지명이 여러 고문서에 등장한다.그런데 태전지명의 논쟁이 나온 이유의 근원이 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인 전중여수가 지은 <대전발전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합일강제합병이 되기 1년전인 1909년 1월에 순종을 모시고 부산을 다녀오던 길에 열차가 태전 역에서 장시간 정차할 때,태전의 풍광이 수려하고 한문 글뜻이 크다는 太 字 인걸보고 太 자에서 점하나 떼고 그냥 大 字를 써서 대전으로 부르라고 명령했다.그러나 근거없는 풍문을 기록한 내용일 뿐이다.1909년 이전에도 태전과 대전이라는 지명이 혼재되어 나타났다는 점을 볼수 있으며 태전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05년 대전역이 신설된 이후이며,1910년 이후에 대전이라는 이름으로 굳혀지는 것이 대전 이름의 유래와 역사이다.
실제 대전역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이 관공서 자료에 등장하는데,<沃溝港報牒- 大田停車場에서 物包를 찾으니 4包 뿐이어서<발신처 沃溝監理 鄭恒朝 (1904년 12월 5일)>라고 기록되어 있다.1904년부터 등장하고 있다.태전역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자료를 보면<起案-太田驛을 거쳐 南大門驛에 도착하는 일정을 알리는 電報 제19호. <발신처-大邱內閣陪從所(1909년 1월 13일)>라고 나온다.이등방문의 개명지시가 내려지는 시점인데,그렇게 빨리 개명이 될 수 없으므로 이등방문 사건 전에 태전지명이 등장한다고 보아야 하며,실제 1909년 이전에 태전으로 불리운 기록은 많다는 점에서 이등박문의 대전지명 개조설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대전지명이후에 태전지명이 가세되면서 혼용된 이유는 대전역 인근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대전보다 태전으로 부르는 것이 더 편해 혼용되다가 1910년 한일합병이 된 이후에 대전으로 통일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보였다.중요한 것은 뒤에 전(田)을 붙이는 것은 일본식 작명이라는 점이다.더 중요한 것은 대전이든 태전이든 이 지역이 대한민국의 태반역활을 한다는 것이다.
만일 대전이 나쁜 이름이라면 대한민국을 태한민국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상제님이 대한민국의 국호를 대시국으로 칭하도록 공사를 보신 것으로 보아 결코 대는 나쁜 의미는 아니며.대한민국이 대중화가 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더 긍정적이라고 본다.특정교단에서 대전 원지명이 태전이라는 지명을 고집한 이유는 상제님 공사에서 태전에 후천대업의 푯대를 꽂았다는 지역이 대전이라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아전인수의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대전의 대를 꺽기 위해 말뚝을 밖는 것처럼 태로 고칠 수 있는 것이다.해석하기 나름인 것이지 대가 나쁘고 태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애기이다.
대전이 개발되기 전에 콩밭이기 때문에 대전이 아닌 태전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이러한 이유로 생겨난 지역은 많다.대구 북구 태전동이 이에 해당한다. 대구 태복산 밑에 많은 콩밭을 이루었다고 해서 태복산의 태(太)와 밭 전(田) 을 따거나 콩 태(太)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진해는 벚꽃으로 유명한데.일본식 이름인 대전(大田)과 태전(太田)의 거리가 존재한다는 점도 타산지석이다.
정읍으로 가는 호남선 공사의 비밀
▣ 이어서 종이 한 장을 가져오라 하시어 우리나라 형상의 지도를 그리시고 각처로 철도선을 그리신 다음 선마다 점을 쳐서 역을 표시하시니라. 또 한 점에 ‘정읍’이라 쓰시고 그 남쪽에 점을 찍어 ‘사거리’라 쓰신 뒤에 두 점 중앙에 점을 찍으려다 그치기를 여러 번 하시더니 대흥리를 떠나실 때 점을 찍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점이 되는 때에 세상일이 바로잡히게 되리라.” 하시니라. 또 지도 한가운데에 선 하나를 가로로 그으시되 그 선에는 점을 찍지 않으시니라. (도전 5:349)
<우리나라 형상의 지도를 그리시고 각처로 철도선을 그리신 다음>에서 본다면,남조선의 철도 혈맥을 계획하는 공사를 보신 것으로 판단된다.위 공사를 보신 시기를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경부선 개통년인 1905년은 천지공사의 시기인 1901~1909년 안에 있기 때문에 경부선 설계부터 천지공사가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위 공사 내용은 호남선 가지 철도맥을 내는 공사로 보인다.
<‘정읍’이라 쓰시고 그 남쪽에 점을 찍어 ‘사거리’라 쓰신 뒤에 두 점 중앙에 점을 찍으려다>에서 본다면,정읍을 관통해서 호남선을 착공하라는 천지공사 내용인 것이다.정읍역 다음이 사거리역인데.실제로 일제강점기 철도지도를 보면 정확하게 사거리(1967년 백양사역으로 개명)역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천지공사의 정확성에 다시 한번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림설명]일제시대 철도역을 안내하는 지도이다.일부 태전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대부분 대전역으로 표시된 지도이다.철도역 이름이 대전으로 표기되면서 대전의 대표이름 회덕은 자연스럽게 밀려나는 모습을 오른쪽 상단에서 볼 수 있다.그 당시 철도 모습은 두 팔과 다리는 벌리는 대(大)자형 철도그림이다.정읍이 바로 태(太)자형의 점표시 지역임을 알 수 있다.아래 3개 지역 사진을 보면 대전역을 기점으로 호남선이 빠져 나오고 있다.정읍역 표시 다음 역이 모두 사거리역임을 알 수 있다.
정읍역과 사거리(백양사)역에 점을 찍으려나 번복하면서 나중에 찍는 것으로 보아 한참 늦게 일이 추진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후일 이곳을 기점으로 새로운 교통중심지가 되는 구상이 실현되거나 어떤 강력한 중심지 역할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점이 되는 때에 세상일이 바로잡히게 되리라.”>에서 본다면 정읍이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대한민국의 중심이자 조화정부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혹자는 대전이 이미 교통의 중심인데 어떻게 바뀔 수 있냐고 반문하겠지만,서해가 육지가 되고 동양삼국이 하나가 되면서 한국은 남통만리 대국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중심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술에서 새로운 후천지도 상상도 분석글 예정)
< 지도 한가운데에 선 하나를 가로로 그으시되 그 선에는 점을 찍지 않으시니라>에서 본다면,지도 한가운데를 선 하나를 가로로 그린다는 것은 대륙철도 내지 한중 해저터널과 한일 해저터널을 의미하며,한중이나 한일 해저터널일 가능성이 많다.이미 수년전부터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그림설명]한중해저터널과 한일 해저터널 그리고 제주로 가는 해저터널등 다양한 노선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한중일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대륙실크로드의 기점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천지공사를 의미한다.한중 해저터널이 가능한 것은 서해가 수심이 깊어도 100m가 넘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다.산동반도는 상해와 북경의 제남에서 산동으로 이어져 한국으로 넘오는 길목인데,경기도 인천.화성과 충청도 평택.당진 전라도 군산 새만금이 거론되고 있다.또는 새로운 루트인 상해에서 제주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또한,부산과 일본 한일 해저터널 구상과 목포와 제주 해저터널 구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중과 한일 해저터널의 중심지가 전라도 군산과 정읍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새만금과 산동성 연결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 상제님 공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현실적으로 다른 노선보다 수심이 낮을 뿐 아니라,암반이 잘 발달해 안전한 지형구조를 가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실제 박근혜 정부의 구상이자 박정희 프로젝트의 비밀안인 가로림만 프로젝트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한일 해저터널이 부산이나 거제로 연결되면 한중해저터널의 종착지와 연결되는데,거제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하면,통영 대전 고속도로를 따라 통영-사천-산청-함양-장수-진안-전주로 이어지거나.통영-사천-광명-순천-광주-장성-정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한중과 한일해저의 만남은 전라도 일대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중 해저터널의 한국 종점이 새만금과 군산이 되고 한일 해저터널과 만나는 한중 해저터널 지역이 정읍이 된다면 한·중·일을 대표하는 동북아의 관문이면서 후천조화정부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가로로 선을 그은 양상은 한중 한일 해저터널이 지나가는 새로운 교통로일 가능성이 존재하며,군산으로 한중해저터널이 결정된다면,군산과 정읍은 한일 해저터널이 한국으로 넘어와서 만나는 연결점으로 분석된다.
대전 철도공사와 콩밭공사는 태반의 역할이자 3변 교운의 분기점
▣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일 년 중에 가장 빨리 자라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모두 “대나무입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4 말씀하시기를 “대(竹)의 기운이 만물 중에 제일 크니 그 기운을 덜어 쓰리라.” 하시니라.(중략) 또 말씀하시기를 “도운(道運)의 개시(開始)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를 이루리라.” 하시니라. 이 해에 대가 크게 흉년이 드니라.(도전 6:106)
<“일 년 중에 가장 빨리 자라나는 것이 무엇이냐?”>에서 본다면,가장 빨리 성장하기 위한 기운으로 대나무 기운을 취한다는 점에서 식물의 속성을 이용해 교운공사를 보았다.<이 해에 대가 크게 흉년이 드니라.>에서 본다면 기운을 취했기 때문에 대나무가 흉년이 들어 없어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상제님께서 공우를 데리고 김제 봉황산(鳳凰山)을 지나시다가 말씀하시기를 “저기 저 산이 황우산(黃牛山)이니라. 애기씨름, 총각씨름 다 지내고 비교씨름 상씨름에는 황우를 거는데 봉황산 와우(臥牛)로 씨름판 소를 걸어 놓았느니라. 상씨름 하는 자는 콩밭 이슬을 맞으며 판밖에서 술 고기 많이 먹고 있다가 ‘아우’ 소리 한 번에 똑 한 사람 지우고 황우를 몰아가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6:56)
상씨름의 상금으로 소를 거는데,소기운을 가지는 산이 김제 봉황산임을 알 수 있다.봉황산에 상씨름 기운이 응기한 것을 알 수 있는데,대전의 봉황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제가 진정한 콩밭이자 태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상제님께서 서산(西山)에 이르시어 공우에게 물으시기를 “공우야, 내가 텃밭을 찾아가는데 내 텃밭이 어디로 가야 있겠느냐?” 하시거늘 수부님께서 불쑥 대답하시기를 “당신 마음먹고 가시는 길이 텃밭 아닙니까?” 하시니라. 이어 공우가 상제님께 여쭙기를 “어디로 가시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임피로 해서 태전 간다.” 하시니라. (도전 5:299)
< “공우야, 내가 텃밭을 찾아가는데 내 텃밭이 어디로 가야 있겠느냐?”>에서 본다면,실제 콩밭지역에 가서 콩밭기운을 거두는 것을 알 수 있는데,콩밭공사가 아닌 텃밭공사임을 알 수 있다. 콩밭공사는 순창 회문산등 전북칠읍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이미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가장 큰 콩밭이 있는 지역이 대전이기 때문에 간 것이다.
텃밭공사 이후 콩밭천지인 대전은 콩밭이 없어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므로 대나무공사이후 대나무 흉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대전은 실제 한반도 태반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계룡산의 기운을 끌어쓰기 위해 계룡산 정상에서 닭울음소리를 내는 공사도 보시고 대전 태봉산에 올라 태봉기를 흔드는 공사를 본 것이다.대전에서 행한 대다수 천지공사의 상징인 봉황이나 태봉 계룡은 모두 고천황후님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금강하구로 계룡산 기운를 모아서 군산과 오성산에 있는 명월의 도시 서요동에 조화정부를 건설하는 기운을 취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대전에는 조화정부 어떤 시설이나 궁이 들어선다는 내용이 일체없고 조화정부의 구역에 세종이나 대전이 빠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전히 자신의 교단이 있던 지역이 후천의 수도라는 아집 속에 왜곡된 성구해석을 조장하고 있으며.자신의 교단이 종통이라는 논리 속에 수많은 천지공사의 내용을 자신의 교단과 관계가 있거나 자신의 지도자를 암시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진리를 조작하고 있다.100년 교운의 역사 속에서 난번의 진리해석이 사라지고 새로운 해석 속에 진법의 참신앙이 태동되는 것이 풍류주세백년진(風流酒洗百年塵)일 것이다.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 난법이 도태되면서 진법이 태동되리라 본다.이제는 원시반본의 시대를 맞이하여 100년전의 보천교의 태동지가 묵은 때를 벗고 다시 태어나는 진법의 정신적 고향으로 다시 태어나는 흐름이 진행될 것이.추석이 되면 고향을 떠난 타지의 자식들이 출세하여 돌아오듯이 군산과 정읍이 세계 조화정부의 중심지로 서서히 부상하면서 교운의 줌심도 서서히 원시반본하는 흐름을 보일 것이다. 풍류주세백년진(風流酒洗百年塵)이 시작된 시기에 3변 교운의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지자 13-08-17 07:01 댓글상단
태전과 대전공사를 지난 글과 이번글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체계적으로 쓰다보니 이번에도 분량이 오버되 한글자도 더 안들어갑니다.다음주에 대전공사 마무리 소결 들어갑니다.질문과 평가는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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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아라사군사 ↓
양심님의 댓글
양심 13-08-18 00:01 댓글상단
예지자님의 방대한 자료와 글속에서 많이 배웁니다..신앙은 좀 했어도 잘못 알고 있는것이 많습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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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지자 ↓
예지자님의 댓글
예지자 13-08-18 01:58 댓글상단
to 양심 ↑ 사실 크게 보면 충청남도와 전라남도도 조화정부 수도광역권에 포함되지만.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전북칠읍의 구역은 매우 중요한 가이드라인입니다.실제 조화정부 조직이나 궁궐이 들어서는 중심과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위치와 범위가 중요합니다.왜냐하면 자신의 본부가 있는 곳이 후천 조화정부라고 하면서 진리를 조작하는 일들이 지금 현 증산교단에서 벌어지고 있으며,더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자신이 천자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대전이나 전북은 인근이라고 하면서 같이 묻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조화정부 하나만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왜곡된 것이며,제가 화두로 꺼내지 못한 다른 많은 부분도 대부분 엉터리라는 점입니다.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후천을 다스리는 천자의 논리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풀어내나보니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있습니다.후속적인 천지공사 대부분이 잘못 해석된 내용입니다.참고하시기 바랍니다.사오미 개명 수구지 등등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대부분이 잘못 해석된 것들입니다.특히 조직과 관련된 해석은 거의 100% 틀리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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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님의 댓글
양심 13-08-19 12:10 댓글상단
무더운 날씨에 글작업하시느라 고생하십니다~~
상제님의 진정한 의도가 하나 하나 밝혀지리라 봅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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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사군사님의 댓글
아라사군사 13-08-22 23:51 댓글상단
to 예지자 ↑ 예지자님 언젠가 한번 뵙고 싶네요.^^ 해박하심에 늘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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