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호롱불(펌)2_다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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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3-12-09 14:27 조회6,999회 댓글0건본문
(게시판의 글쓰기 한계 때문에 부득히 나누어 ctrl-v합니다)
내가 죽어 볼 수 없어도 나의 후손들이 살아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 전생(前生)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존재(存在)한다.
어떤 모양,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것을 바로 나 자신이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현세에서의 내 생각, 나의 판단,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수준이
내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고, 그 모든 것이 나의 다음 생을 만들어 가게 된다.
예수께서도 말씀한 적이 있지만, 신(神)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우주의 법칙아래 내가 결정하고, 내가 만들고, 내가 맺고, 내가 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神)은 참으로 공평한 존재(存在)이시다.
아첨한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지도 않으며, 당신을 부정했던 사람들에게도 절대 불이익(不利益)을 주지 않는다.
자신을 무지의 수렁으로 몰고 간 책임을 스스로 질뿐이다.
어제는 텔레비전에서 학원 폭력에 관한 프로그램 방영이 있었다.
중학생, 고등학교 학생들 중 상당수가 폭력 서클에 가담하고 있었다.
매스컴에서 침소봉대(針小棒大) 했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지나온 시절보다 훨씬 더 심하고 행태가 고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불과 몇 년 후 모두들 후회하게 된다.
남에게 상처를 입힌 일, 남의 돈을 빼앗아 유흥장에서 낭비한 일,
용기를 자랑하느라고 자신의 몸에 칼자국을 만들고 담뱃불로 지진 자국들.
그 모든 행위가 뼈아프게 후회할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자신을 더럽힌 것, 자신의 몸에 흉터를 남긴 대가를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성인이 되어 처, 자식을 거느리게 되면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대가를 가족에게까지 물려준다.
우리 주변에서 부모의 잘못으로 자식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영혼의 타락- 양심의 법을 저버리는 일은 자손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권력욕 때문에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과,
그 명령에 따르던 사람들과, 그들에게 이용당한 사람들 모두
각자 자신이 저지른 무게만큼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예외는 없다.
어린아이들의 조그마한 폭력집단이나 구국의 결단으로 폭력을 행사한 그들이나 다 같은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남의 과오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악용(惡用)한 사람도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하는 것이 하늘의 법(法)이요,
우주의 법칙(法則)이요, 양심의 법이다.
이 법칙을 자신의 영혼에서부터 깊이 깨닫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유체이탈의 목적이다.
하늘의 법은 국가도, 종교도, 종파도 뛰어넘는다.
이승과 저승, 지구를 포함한 모든 별들이 하늘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우리네 인간들도 아집을 버려야한다.
특히, 종교인들은 각성해야만 한다.
왜 그런가?
바로 자신들이 하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르게 전할 수 없고, 자신들만이 선택된 사람들이란 이기적이고 건방진 생각이 자신뿐만 아니라 순진한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폭풍전야(暴風前夜)같던 80년대 초(初).
서울의 한 복판에 있는 어느 고급호텔에서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고,
성실한 방송매체 덕분에 이름 없는 필자까지도 알게 되었다.
이름 하여 “전 두환 장군과 국가를 위한 조찬 기도회.”
종교인들이 알아서 했는지, 깡패(?)들이 겁을 주어 시켰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제법 여러 번 그런 해괴한 장면이 보도되었던 일이 있었다.
화려한 호텔에서 밥상 받아놓고 기도하던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는데, 처, 자식이 보고 있는데, 자신이 속한 교회의 신도(信徒)들이 모두들 보고 있는데, 용감하게(?) 그런 짓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하느님을 싸잡아 욕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들의 비싼 기도가 통했는지,
그들의 하나님은 고급 호텔을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빌어준 전 두환 장군은 최고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이 하늘의 법칙을 알았더라면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결단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주의 법칙이 얼마나 준엄한지 모르는 엉터리 목자들의 말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불쌍하다.
신의 섭리가 얼마나 공평하고 준엄한지 모르는 자들이 신의 뜻을 가르친단다.
소가 웃을 일이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 천년동안 싸우고 죽인다.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같은 조상(아브라함)의 후손인데도 말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여 원주민을 학살하고,
미개한 인디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이 과연 하늘의 뜻이었을까?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 짐승처럼 부리던 자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던가?
노예 해방을 반대하여 전쟁하던 이들도 모두 기독교도들이었다.
이 승만, 이 기붕, 박 마리아....
박 정희, 전 두환씨와 그를 맹종하던 인물들...
그들 대부분이 불교도나 기독교인이었다고 알고 있다.
불교가 타락했나, 기도교가 타락한 것인가?
아니다, 그들의 정신이 타락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목적과 가치가 종교적인 양심보다 앞섰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권력욕, 재물욕이 양심의 법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양심의 법- 하늘의 법칙을 외면한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그 과오가 두고두고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도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죽은 자들은 살았을 때의 고통은 별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도 곧 알게 된다.
머지않아 모두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다음의 후회는 너무 늦다.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찾아내어 치러야 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전시적인 종교행사나 치르지 말고, 처절 하리 만큼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노라면 길이 보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진심의 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뭔데 주제넘게 그런 소릴 하느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죽은 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고,
그들이 어떤 경로를 가게 되는지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소리다.
필자의 말을 믿든 말든 당신의 자유다.
필자는 내 말을 믿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당신이 직접 알아보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싫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육신이 수명을 다 하거나, 병으로 죽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으나
일단 죽으면 영혼은 육신과 분리된다.
영혼이 머무를 집이 사라진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머물러온 자기의 육신-바로 그것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이 죽음이다.
죽음이란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는다.
우리가 죽은 자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얘기를 나눌 수도 없는 것처럼 죽은 자들도 산 자를 볼 수 없다.
음신이탈은 육신으로부터 탈출이기 때문에,
이탈 후에 만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자들이요
건물과 물건들도 죽은 세계에 속한 것들이다.
이탈을 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그들을 엿보거나,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유체 이탈에 관하여 조금씩 언급이 되어있는 책들이 엉터리였고,
영화나 소설 속의 얘기를 사실인 것처럼 무책임하게 써먹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체이탈이 투명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필자가 제시하는 방법으로
이탈을 시도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마음만 바르게 갖는다면 틀림없이 모두 성공할 것이다.
여러 사람이 증명해 보일 터인데 어떻게 필자가
허튼 소리를 하겠는가?
이탈이 되는 순간부터 당신은 죽은 자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절대 이 세상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남들을 훔쳐보거나 간섭 할 수 없다.
이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유체이탈이 아닌 사술(邪術)이나 다른 방법으로 가능한지 모르지만 음신이탈로써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유체이탈을 하여 세계 각국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보고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착각이나 환각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속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으로는 전혀 쓸모가 없단 말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유체이탈이 왜 필요한 것일까?
이탈이 가능하다고 해서 초능력자 행세를 할 수 없다.
이탈의 과정을 타인에게 보여줄 방법도 없다.
염력(念力)으로 애꿎은 숟가락을 구부리고 절단 할 수 있거나
염사(염력으로 사진 찍는 것)정도는 할 수 있어야 방송에 출연해서 돈도 벌고 유명해져 초능력자 행세를 할 수 있을 것인데, 유체이탈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른바 초능력이란 것은 전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신(神) 내린 사람들 같이 용한 점쟁이 노릇도 불가능하다.
오로지 자신의 깨달음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뿐이다.
한 가지 더 할 수 있다면, 죽어서 제 갈길 몰라 헤매고 있는 떠돌이 영혼을
도와주는 일이다.
그 중에는 자신의 가족 일원이었던 이도 있을 수 있고 생면부지(生面不知)인 사람도 있다.
죽어서 제 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을 아무리 많이 구제 해 주어도 생색이 나지 않는다.
신문에도 나지 않고, 상도 받을 수 없으며,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도 없다.
모두들 산 자에게만 관심이 있다.
단 한 사람만 구해도 영웅이 된다.
구제된 사람도 영웅이 된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 모두들 보지 않았는가?
안타깝게 죽어간 사람들은 외면당한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은 재물도 생기고 위로도 받고 상도 받는다.
매스컴이나 정치인들은 속성상 그럴 수도 있다고 보아주지만
종교인들까지 한 다리 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역겹다.
유명해진 어떤 사람을 구출하기 위한 작업의 여파로 소리 없이 죽어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불쌍한 사람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자는 불쌍하다.
가족들조차 도와줄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종교까지도 산 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밖에 없다.
왜?
죽은 자에게서는 그 대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백만 명을 여의도에 모아놓고 멋진 설교로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람도 방법을 모르면, 죽어서 갈길 몰라 헤매는 단 한사람을 구해줄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신은 할 수 있다.
수천, 수 만 명도 구할 수 있다.
그 따위 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 않는다고 죄가 되는 것도 아니며 벌 받을 일도 아니니까.
한다고 해서 신(神)으로부터 상 받을 일도 아니다.
그저 길을 가다 만난 사람이 길을 물었을 때 아무 조건 없이 가르쳐 주는 것처럼 자신의 행위에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행(行)하면 되는 것이다.
왜?
옳은 일이니까.
필자는 그런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갈길 몰라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억울한 죽음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6.25 전쟁을 전후해서 벌어진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숱한 양민이 억울하게 죽었고, 몰지각한 일부 군인들의 권력욕 때문에 광주에서도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관계자들의 관리 소홀, 정비 불량으로 인한 교통사고, 건물 붕괴사고,
가스 폭발 등 졸지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급사한 사람들은 한동안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른다.
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한(限)으로 뭉친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가야할 길을 가기를 거부한다.
그런 사람들도 조금만 도와주면 바른 길을 찾아 나선다.
당신이 바른 마음으로 이탈을 한다면 많은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3년 전쯤에 어떤 여인이 필자를 찾아왔다.
하얀 소복에 젊고 예쁜 여인이었다.
그녀는 무턱대고 도와 달라고 했다.
필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데 나를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하는가?』
『저는 흉악한 무리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고초를 겪는가?』
『그 사람들은 네 명인데 형제간입니다. 저의 집 근처 작은
움막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마을의 양반 집 처녀였는데,
어느 날 그들에게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차례로 저를 욕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앓다가 결국 자결을 하고 말았답니다. 저는 원한에 사무쳐 그 불한당 사형제의 자식들을 모두 태어나자마자 모두 불구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언제 일인가?』
『사 백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찌해서 당신을 따라다니는가?』
『그놈들이 살았을 때 자식들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어서 제가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형제가 죽어서까지 뭉쳐 다니면서 저를 찾아다녀요.
복수하려고 말입니다. 괴로워서 미치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어째서 그대는 명부(冥府)에 들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그런 흉악한 놈들에게 쫓기는가? 』
『저는 죽어서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명부에 들 수 없답니다.』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알고 뉘우치면 들어갈 수 있단다.』
그렇게 그녀와 얘기하고 있는 중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그놈들이 벌써 따라왔나 봅니다. 저는 이만 갑니다.』
처녀는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고 험상궂은 텁석부리의 장한 네 명이 들이 닥쳤다.
『분명히 이리로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저희들끼리 수군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가 불쌍하기는 했지만 나로선 방도가 없었고, 죽은 사람이 산사람을 해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녀는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겨났다.
그 의문은 얼마 후에 풀렸지만 어쨌든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즉시 위로 그분을 찾아 올라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당신이 해결해 주겠다고 하시면서
걱정 말고 돌아가라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일은 결말이 났고 그녀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어찌되었는지 확인해 필요도 느끼지 않았으나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저승에서 사람을 찾으려면 생전에 살았던 곳과 이름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가능한데, 나는 그녀의 이름도 살았던 곳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에나 나올만한 이 이야기는 결코 꾸민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얘기했더니
“아빠, 혹시 지어낸 이야기 아니에요?”하고 웃었다.
혹자들의 비웃음을 살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얘기를 하는 이유를 독자들께서는 잘 아실 것이다.
여러분 중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참고하라고 썼지만, 일부러 그런 일을 찾아다니거나 원하지도 말기를 바란다.
그러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일들이 많이 있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몰려들 가능성도 있다.
당신이 그것을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잘못하면 당신의 현실 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
필자는 이 일로 인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들 산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벌 할 수 없듯이
죽은 자도 산 자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는 것으로 알아왔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限)이다.
한이 맺힌 자는 그 한을 풀려고 한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한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염(念力)은 엄청나게 강하다.
강한 염은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러한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다.
때로는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꾸민 얘기들도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事實無根)인 경우는 아닌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서도 이런 짓을 한다.
그 때문에 흉측한 사건들로 세상이 시끄럽기도 하고
감옥은 언제나 만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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